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2006-01-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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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의 눈빛

우리집 위로는 연립주택이 있고, 그 주택과 우리집 담벼락 경계선에서부터 도로가 우리집 쪽으로 비탈져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그 연립주택 주민들은 항상 쓰레기를 우리집 쪽에 내다놓았습니다. 동네 고양이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매번 쓰레기 비닐을 찢는 탓에, 쓰레기들이 바람을 타고 비탈길을 따라 우리집 담벼락과 대문 앞으로 흩어져 내리면서 온 동네를 지저분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사방에 흩어진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항상 우리 식구들 몫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여러 차례 그 곳 주민들에게 자기집 앞에 쓰레기를 배출할 것을 부탁도 해보았지만, 결과는 언제나 한결 같았습니다. 할 수 없이 지난봄에는 동사무소의 허가를 받아 비탈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돌 화분을 설치하였습니다. 더 이상 쓰레기들이 비탈길을 따라 흩어져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돌 화분 너머 우리집 쪽 비탈길에 쓰레기를 갖다 두는 사람들이 있어 한동안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아내와 함께 외출할 때였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우리집 담벼락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흩어진 쓰레기를 손으로 모아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습니다. 우리 식구 아닌 사람이 우리집 앞 쓰레기를 주워 담는 것은, 20년만에 그날 밤 처음 목격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아주머니께, 누구시기에 쓰레기를 치우고 계신지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우리 주택 주민들이 늘 이 댁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항상 미안해서요…”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분은 위쪽 연립주택에 사는 분이었고, 같은 주택의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를 홀로 치우는 중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빛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봉사할 때에도 사람들은 우리의 눈에서 이런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빛이 충만하다면 겨울밤이 아무리 추워도 춥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2005년 12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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