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자도 갱년기를?

2005-11-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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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메노포즈’(갱년기)라는 뮤지컬을 보았다. 한국에서 온 친구 부부가 브로드웨이 공연을 하나 보고 싶다고 해서 티켓 매스터를 통해 부랴부랴 구입한 티켓이 바로 메노포즈였다.
제목도 그렇고, 아무래도 남자가 가기는 좀 꺼려졌지만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의 갑작스런 부탁이라 그냥 동행하기로 했다. 온통 자리를 가득 메운 여자들 사이에 남자 관객이 대여섯 명 되었는데 시종일관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나중에 여러 친구들과 모여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남자에게도 갱년기가 있는가 하는 화제로 의견이 분분했는데 내과의를 하는 동창이 “있고 말고!” 라며 단칼에 흑백을 가리었다. 여자들처럼 명백한 증세가 표현되지는 않지만 심정적으로 유약해지며 신체적으로도 확실한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나의 환자 가운데 미국인 형사법 변호사가 있는데 한국인 의뢰인들도 종종 찾아오는 모양이다. 얼마 전엔 강도를 당한 70세 노인을 상담했다며 ‘사연이 좀 독특하다’고 내게 말을 걸었다. “이 노인이 사건을 당한 뒤에 정신적 후유증으로 성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말을 계속했다. “사건 전과 후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물었더니 예전엔 일주일에 서너번씩 하던 것이 그 이후로 전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날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다들 한마디씩 보탰다.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부터, 상대가 누구였길래? 하는 의문이 가장 많았고 결국 장년기, 노년기를 어떻게 건강히 보낼 것인가 하는 얘기가 이어졌다.
남성 호르몬은 30대가 되면서 해마다 1~2%씩 서서히 감소하다가 40대에 접어들면 그 경과가 더욱 빨라진다. 이것이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가져오며 성생활의 변화뿐 아니라 자신감이 결여되고 전반적인 신체 능력 저하가 일어난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이 당연한 노화과정이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실은 남성 갱년기에 관한 연구가 의학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자리에서 내과의사 친구가 내놓은 10가지 자가진단 문항은 이렇다.
잠자리에 흥미가 없다. 기력이 없다. 지구력이 예전같지 않다. 키를 재어보니 줄어들었다. 삶에 별 재미가 없다. 웬일인지 슬픈 기분이 든다. 성적 흥분이 안 된다. 몸이 옛날같이 빠릿빠릿하지 않다. 저녁만 먹으면 바로 졸린다. 일을 해도 능률이 안 오른다. 이 중에 세 가지 항목에 해당이 되면 남성 갱년기로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에익! 이사람아, 열 가지 다 내 얘길쎄!” 한 친구가 엄살을 떨며 덧붙인다. “확실히 마누라 의존도가 높아진건 사실이야. 그건 항목에 안 들어가나?” 하긴 이 친구야말로 싸나이 중에 싸나이였는데 요즘은 마누라가 외출한다고 하면 대문 밖까지 배웅을 나갈 뿐만 아니라 저만치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혼자 웃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긴 이미 1993년께부터 남성 갱년기라는 용어가 학계에 등장한 것이 사실인데다가 여성과 마찬가지로 안면홍조(얼굴이 갑자기 확 붉어지며 더운 느낌이 드는 것), 신경질, 우울 등의 증세를 호소하는 남자들이 늘었다.
그러나 저러나 가까운 목사님 한 분은 안면홍조 증세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갱년기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오우 예이, 성령님이 불처럼 역사하시는가봐!” 하면서 기뻐하셨다니 역시, ‘그 분’ 안에만 거하면 갱년기도 띵호와!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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