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고 싶은 이야기 ‘바보같이 살련다’

2005-10-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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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 있을 때다. 한국에서 제법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가 미국에 다니러 왔다가 전화를 걸었다. “김형, 오랜만이요. 4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요. 그런데 왜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평생을 지나셨어요? 형님같은 분이 한국에 돌아와 큰 일을 했었어야지요. 바보같이 사신 것 같아요”
느닷없이 나타나 던져진 말이지만 그 말이 자꾸만 마음에 되새겨진다. 하기야 미국에 올 때는 공부를 많이 해서 조국에 돌아가 큰 일을 하리라는 꿈을 가졌었지만 그 꿈을 다 버리고 이민교회 목회자로 평생을 보냈으니 말이다.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직 공부도 시작하기 전이었다.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하기에 갔다. 그날 저녁 그 교회의 장로와 집사 몇 분이 찾아와 “모든 교인들이 원하니 교회를 맡아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 갑작스런 말에 “저는 빨리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야 하니 여기서 목회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라고 한 마디로 거절했다.
그 때 한 젊은 집사가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학자이신 백로가 까마귀들 틈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하지만 그러나 까마귀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양들이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굶주리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저희들을 그대로 외면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너무도 직설적인 말에 대답을 못하고 “한주간 여유를 가지고 기도하며 생각해본 후 다시 얘기하자”고 하고는 헤어졌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는 중에 이민목회의 길이 내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것이 이민목회를 하게된 동기가 되었고 그 후 한국에 가끔 나갈 때마다 더 좋은 기회도 주어졌지만 이민교회 목회가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한 평생을 다하고 이제 정년이 되어 은퇴했다. 이제 조용히 지내면서 나자신을 되돌아보다가 문득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형은 바보같이 살았어요”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바보같이 산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보았다. 헬라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옥중에서 독배를 마신 것, 인도의 간디가 출세를 마다하고 무저항의 길을 택한 것, 한국의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하지 않고 옥중 순교한 것, 그 밖에도 인간적으로 볼 때 바보같이 사신 분들이 많이 있다.
아마도 가장 바보스럽게 사신 분은 예수님이라 하겠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끝내는 나이 서른세살에 그렇게도 나약하게 죽임을 당하셨으니 말이다.
나는 전화를 건 그 친구에게 “젊었을 때의 꿈은 다 깨졌지만 다시 산다 해도 이민교회 목회자의 길을 택하겠노라”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형은 지혜롭고 약삭빠르게 살았군요” 하는 말을 듣기보다는 “형은 참 바보같이 살았어요”하는 말이 더 좋다. 그러기에 앞으로 남은 여생도 바보같이 살련다.


김대균 목사 (은퇴·등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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