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 속의 비발디’

2005-10-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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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感)이 좋은 계절이다. 세월이 몇 굴레 바뀌어도 매번 이맘쯤만 되면 발끝에 채여 사각거리는 낙엽들에서 차분한 흥겨움이 이끌리게 되고, 그런 느낌에 아무 곳에나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엔 때때로 일손을 놓고 여유를 갖는 나만의 시간으로 채울 때가 참 좋다. 먼 곳을 바라보거나 명상에 잠길 때도 좋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은 때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구수한 커피 향내에 가슴을 담으며 책을 읽을 때가 제일 좋다. 그러다가 슬며시 잠도 드는 나만의 여유를 가지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뜨거운 계절이 막 지난 지금이기에 빛 바래지는 낙엽의 색깔을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여유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맘때쯤이면 늘 들려오는 소리가 ‘청명한 계절’이니 ‘천고마비 계절’이니 하면서 독서를 권하는 캠페인들이 많이 들려오는 때이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음악회다 연극이다 오페라다 하면서 꽤나 감흥과 정취 있는 계절의 분위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도 많이 바뀌어져 있어 무척 아쉽기도 하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젊은이들은 인터넷 서핑과 채팅에 빠져 집안에서조차 서로 얼굴을 보기가 힘들고, 어른들은 그저 돈, 돈, 돈이 되는 새로운 첨단의 문화를 만들어 세상에 제공하려 바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루의 일과를 바쁘게 처리하다 보니 벌써 어둠은 문 앞에 차 있고, 나를 줄곧 따라다니던 둥그런 달은 내 차의 지붕 위에 걸터앉는다.
그런데 이 순간에 문득 뉴욕의 현란한 브로드웨이의 거리와 허드슨 강변을 따라 팔짱을 끼고 걸어다니는 연인들의 모습과 퇴근 시간에 맞추어 빌딩 안에서 물밀 듯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의 인상적인 모습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그것은 마치 비발디의 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제2곡이 막 끝나고 세번째 곡으로 막 넘어가는 순간의 장면과 흡사하게 클로즈업되어지기 때문이다.
수확의 기대와 서정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활기에 가득 찬 얼굴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그 장면들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자칫 짧은 제3곡의 계절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보내고 나면 어느덧 ‘겨울’ 제4곡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
그러면 또 다시 우당탕탕 하는 바쁜 순간들을 맞이한 채 어수선한 제4곡의 계절은 다 지나가게 되고, 세월은 결국 제1곡으로 되돌아가는 여운만 남은 채 막을 내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며, 이제는 올 한해의 사업과 계획들을 중간 점검하고 마무리 하면서 내년의 새로운 사업계획을 미리 세워보아야 하는 중요한 때이다. 반성과 다짐으로 남보다 한발 앞서 생각해 나가야 하는 순간이다.
그래야만 남은 제4곡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이 발표할 다음 년도의 멋진 곡을 만들 수가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우리 모두는 비발디의 ‘사계’ 속에서 제3곡의 선율을 타고 흐르는 중이며, 아름답고 성공적인 협주곡을 완성하기 위해 저마다의 위치에서 힘써 노력하고 있다. 비발디 속의 ‘가을’은 다시 돌아오지만 이 순간만큼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케니 김

(909)641-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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