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금밭과 전등 가게

2005-09-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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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한국을 방문하면 인천 국제공항으로 입국하게 됩니다. 전에는 ‘인천’이라고 하면 항구 도시로 어시장과 소금밭 즉 염전이 생각나던 곳이지만, 지금은 국제공항 건설과 함께 아주 딴 도시로 변했습니다. 그래도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다 보면 염전에 소금이 수북하게 쌓인 것들이 눈에 띕니다. 전에는 물레방아와 같은 것에 작업인이 올라가 밭에 물을 대는 모습을 흔히 봤지만 지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소금은 우리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필수품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소금의 역할은 다양합니다. 우선 대부분의 음식에는 적당량의 소금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그리고 소금을 넣으면 부패를 막을 수도 있어서 방부제 역할을 하고, 소금을 넣으면 뻣뻣한 채소가 곧 부드럽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일 소금이 바닷가 염전 한 구석에 항상 쌓여만 있다면 소금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도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얼마 전 형광등을 사려고 전등 가게를 들렀습니다. 가게에 들어서니 거의 1,000여개가 넘는 많은 모양의 전등들이 대낮보다도 더 밝게 켜져 있었습니다. 우선 리빙룸에 세워 두는 스탠드 식의 전등들, 벽에 붙여서 그 앞에 누가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불이 켜지게 된 전등, 뜰 주변을 밤에도 밝히도록 멋지게 장식하는 태양등, 그리고 보석같이 아름다운 조각으로 다닥다닥 붙여서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샹들리에도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이 전등들이 아무리 고급 제품이라고 해도, 늘 가게 안에서만 불을 밝히고 있으면 전등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전등은 가게 밖의 어둔 곳에서 빛을 비춰야 비로소 제 구실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소금과 전등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무리 많이 배워서 학력이 높고, 아무리 많이 소유해서 재벌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꼭 필요한 곳에 바르게 쓰이지 않는다면 무슨 덕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자유의 나라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가진 능력과 받은 기회는 우리 자신만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나누고 돕고 협력할 때 제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재난 당한 이웃을 향해서 손을 펼 수 없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부유한 삶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당 안에 모여서 우리끼리만 어울려 살고, 울타리 너머의 이웃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금밭에 쌓여 있는 소금이며, 전등 가게에 촘촘히 장식해 놓은 등에 불과합니다. 교회 안에서 교훈과 힘과 지혜를 공급받고 이제는 밖으로 나가서 부패와 불의가 있는 곳과 어둠이 있는 곳에서 제 구실을 잘 감당합시다. 소금과 빛은 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을 희생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박 광 철 목사
(죠이휄로쉽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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