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이전트 일기-산울림

2005-09-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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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산울림 공연을 다녀왔다. 삼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은 한국에서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음악계를 장악하던 록 그룹이다.
그 당시 록음악의 선두를 달리며, 최첨단 사운드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한국에서 10대 후반의 시절을 보낼 때 산울림의 음악은 항상 삶의 일부였다. 386세대인 나에게 산울림은 아련한 향수와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공연 당일 윌셔 이벨극장 인근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한 때 젊음의 상징이었던 이 록그룹의 콘서트에 온 관중들은 거의 40~60대들이었다. 20~30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에게는 관중이 많았다는 것보다 모든 관객이 중년층이란 점이 놀라웠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이 활동했을 당시의 관객들이 나이가 들어서 이 나이 또래가 된 것이다.
아내에게 이곳에 온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아저씨, 아줌마들이라고 했더니 “당신도 중년의 아저씨”라고 친절하게(?) 상기시켜 줬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나이를 먹어가도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꼈다. 일하고 자식 키우느라고 바쁜 나날을 지내다 보니 내가 늙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가끔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공연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추억과 향수에 젖게 해주었다. 나 역시 노래 한 곡 한 곡을 들으면서 그 노래와 이어졌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그려보곤 하였다.
산울림의 히트곡 중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가 있다. 한 밤중에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고 자식을 위해 어머니가 준비해둔 고등어를 보면서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기리는 노래이다. 마지막 가사에는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봐도 좋은걸’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몇 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내가 이 노래를 들려주면 할머님도 좋아하셨다. 유난히 큰 외손자를 아끼셨던 할머니, 어머니가 바쁘셨기 때문에 어머님 대신 손자를 자식같이 키워주신 분 생각이 나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이가 먹은 것은 관객만이 아니었다. 산울림의 3형제도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들이었다. 리드의 김창완씨는 자신이 50대 초반이라고 했다. 둘째 김창훈씨는 머리숱이 적어졌지만, 중년 신사의 멋이 들어 있었다.
김창완씨가 ‘내게 사랑은 너무 써, 난 아직 어린가봐요…’라는 노래를 부르고 나서 멋쩍은 표정을 하며 피식 웃었다. 아직도 어리다는 가사에 자신도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억에 남을 말을 했다. 자신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과거의 추억에 잠기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산다고 말했다.
과거의 좋은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살면서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재에 살면서도 과거에 붙잡혀서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부동산에서도 그 예를 본다. 과거에 좋은 매매, 아니면 힘들었던 경험이 현재의 좋은 기회를 막는 경우가 있다. 과거는 뒤로하고 미래를 향해 나가려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김창완씨가 20대에 섰다는 ‘청춘’이라는 곡이 있다.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보낼 시간을 보내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항상 청춘을 지니고 젊게 사는 사람이다.
(213)534-3243
hchung@charlesdunn.com

정학정
<상업용 전문 Charles Dunn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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