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인이의 소원’

2005-09-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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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아버지 따라갔다 뇌종양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영화 보여줄 프로젝터 있었으면”

2년 전, 인이는 아프리카에서 뇌종양으로 쓰러졌다. 선교사를 아버지로 둔 인이는 치료를 받아볼 길이 없어 병명도 모른 채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다. 현지에 있는 의사 선교사가 이대로 두면 죽겠다고 해서 미국으로 실려 왔는데 오자마자 응급실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 그 뒤로 오랜 기간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병마와 싸웠고 약물과 방사선 등 어려운 치료를 견디어냈다.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열 다섯살 인이는 생명을 다시 건진다면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다.
그 즈음 한 사람이 인이를 찾아왔다. ‘메이크 어 위시’(Make-A-Wish Foundation) 재단의 간사였다. “네가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소원을 말해 보아라” 이 재단은 치명적인 병으로 누워있거나, 혹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단체이다. 세계의 유수 기업과 할리웃 배우들, 스포츠 스타와 각계 유명 인사들이 후원하고 있다.
1980년, 크리스 그레이씨어스라는 일곱 살짜리 소년으로부터 이 단체는 시작됐다.
병상에 누워있던 크리스의 꿈은 경찰관이 되는 것. 우연한 기회에 크리스는 타미라는 한 국경세관원을 알게 되었는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크리스는 타미를 향해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해보이며 소리쳤다. “꼼짝 마라! 난 경찰이다!”
이렇게 시작된 우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졌지만 어린 크리스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갔다. 회생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안 타미는 “경찰 헬리콥터를 태워주마”고 어린 소년을 위로했다. 그리고는 애리조나 경찰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경찰관들의 배려로 크리스의 꿈을 실현시킬 날이 왔다.
이른 아침, 경찰 헬리콥터가 크리스를 데리러 왔고 경찰국에 도착한 크리스는 곧이어 모터사이클 행렬의 호위를 받으며 피닉스 부근 일대를 순찰하는 임무에 동참했다. 아픈 것도 잊은 채 행복한 하루를 보낸 크리스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어린 크리스는 그날의 감격을 가슴에 새긴 채 고통을 견뎌냈다. 경찰관들은 꼬마소년에게 맞는 제복과 모터사이클 테스트에 합격한 경찰관에게만 수여하는 기념 배지를 크리스에게 선물했다. 그 다음날, 소년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이후로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을 많은 병상의 어린이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NBC를 통해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디즈니랜드와 같은 여러 단체들이 후원을 자청해 왔으며 오늘 현재 약 15만건의 소원을 이루어주기에 이르렀다.
인이를 찾아온 간사는 온 가족의 일등석 항공편 초호화 하와이 여행을 제안했고 다음 주까지 생각해볼 여유를 주고 갔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날, 인이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젝터를 한 대 살 수 있을까요? 아프리카에 가지고 가서 현지 애들에게 교육영화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튿날, 병원으로 리무진 한 대가 도착했다. 리무진이 LA에서 가장 큰 전자제품 업소를 찾았을 때, 그곳 사장이 정문까지 나와 인이를 정중히 맞이했으며 인이는 프로젝터와 랩탑 컴퓨터를 샤핑했다. 인이는 얼마 후 완치되어 아프리카로 떠났다.
최근에 인이는 아버지와 함께 회교도들이 갇혀 있는 감옥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프로젝터로 예수 수난을 담은 멜 깁슨의 ‘더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를 상영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예수를 모르던 회교도 간수 한 명이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인이가 선교사로서 거둔 첫 열매였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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