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말씀 세 광주리’

2005-09-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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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 살에 위없는 두루 바른 깨침을 얻어 부처가 되신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이레 동안 보리수 아래 그대로 앉아 망설이셨다. 당신이 깨달은 이 진리는 너무나도 깊고 커서 가르쳐봤자 알아들을 이나 있을런지, 그리고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바쁠 텐데 사람들이 이런 진리에 관심이나 가질까도 싶었다.
그러다 연꽃도 흙탕물 위에 솟아 핀 것, 물위에 나왔다 잠겼다 하는 것, 내내 잠겨만 있는 것 등 세 무리가 있음을 보시고 우선 속세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법을 전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시니, 이것이 이후 여든살에 눈을 감으실 때까지 마흔 다섯 해 동안 이어진 기나긴 전법의 첫걸음이었다.
부처님은 설법을 하실 때는 당신 위주로 하지 않으시고 알아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여러가지 방편으로, 주로 그 고장 사람들이 쓰는 쉬운 말로 하셨으니 교육의 기초를 확실히 터득하신 분이라 하겠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설법을 듣고도 아무도 받아 적지는 않고 가까이서 들은 제자들이 통째로 외어서 다른 데 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다시 말로 전했는데 이런 분들은 기억력 하나는 비상했지만 자연히 외기 쉽게 내용은 노랫가락처럼 되고 되풀이되는 후렴 같은 것이 많이 들어갔다.
이분들이 ‘들은 사람’, 즉 성문들인데 부처님이 돌아가시자 바로 수제자들 중에 마하가섭이 나서서 들은 사람 오백 명을 모아 각기 들은 바를 외게 하니, 한 사람씩 일어나 ‘나는 이렇게 들었다’하면서 왼 것을 풀어내고 거기 모인 다른 들은 사람들이 맞다 틀리다 하며 따져서 진짜로 들은 바를 간추려 내었다. 이것이 ‘첫 번째 모여 외기’ 곧, ‘제1차 결집’으로 역사상 네 번의 결집이 있었다. 한문 경전이 대개 ‘여시아문’으로 시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에도 검증된 말씀 내용을 글로 옮겨 적자는 게 아니었고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하여 다시 말로 외기 위함이었는데 내용 중 부처님이 진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경이었으며 교단의 규칙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율이었다.
그러다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 때 천 명이 모여 ‘세 번째 모여 외기’를 했을 때는 그 동안 경과 율을 연구한 논문들도 다뤘는데 이것을 ‘논’이라고 하였다.
이때 비로소 왼 것을 글자로 옮겼지만 아직 종이가 없던 시대라 검증된 문구를 넓은 나무 잎사귀에다 써서 경, 율, 논으로 갈라서 각각 다른 광주리에 갖다 넣었다. 이것이 세 광주리, 즉, 산스크리트말로는 트리피타카, 한문으로는 삼장이고 이것 얻으려고 천신만고 먼 길을 떠난 분들이 당나라의 현장 같은 삼장법사이고 거기 얽힌 꾸며낸 얘기가 서쪽 다녀온 얘기 즉, 서유기이며 손오공, 저팔계 얘기다.
그 때는 이미 대승불교가 크게 번지기도 해서 말씀을 담은 세 광주리는 엄청나게 불어있어 삼장 법사님들도 고생이 많았는데, 이런 광주리들을 통틀어 한데 묶은 것을 대장경이라고 하고, 중국말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 한국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가장 꼼꼼하고 푸지다. 남북한에서 각각 이를 통째로 한국말로 옮겨냈는데 이 중 남한 것은 누구나 컴퓨터로도 볼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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