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과 만남, 그리고 함께 가는 사람들

2005-09-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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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별거야
혁명이 별난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늘 땅에 떳떳이
따뜻한 저녁 상을 함께 먹는 거지

위의 글은 오래 전 박노해씨가 썼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처음에는 무심코 읽었는데, 내용을 음미할수록 그 깊은 맛이 마음에 담겨옴을 느낀다.
그럴듯한 명분을 세워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보지만, 결국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단순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서로 사랑하며, 나누며, 함께 가는 것이다.
굳이 많은 사람, 필요 없다. 고돈 맥도널드가 말한 것처럼, 그저 나의 속내를 다 털어놓아도 뒤탈이 없을 사람들 앞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주전 맹장 수술을 했다. 급성인데다 맹장이 터지는 바람에 제법 오래 병원에 누워지냈다. 계획에도 없던 휴가(?)였지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지난 16년간의 목회도 생각해 보았고, 비몽사몽(마취가 덜 깨서?) 간에 무수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생각해 보았다. 사랑했던 사람들, 미워했던 얼굴들, 그러면서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얼굴들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사랑과 만남, 그리고 함께 가는 사람들, 이 단순한 도식이 인생의 행복임에도 이것을 잘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다.
너무 복잡한 우리의 의식 구조 때문이기도 하고, 작은 것에 민족 못하는 우리의 허영심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자신과 하나님께 정직하지 못한 우리의 겉치레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아웅다웅한다.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명분 없는 전쟁에 부질없이 시간을 투자하다 마음과 몸이 상하기도 한다.
이제는 이런 허울들을 다 털어 버렸으면 좋겠다. 좀 더 단순하고 정직했으면 좋겠다. 처음 주님 만났을 때의 어린아이 모습으로 돌아가, 그 사랑 앞에 울기도 하고, 발가벗은 몸으로 주님 품에 안기기도 했으면 좋겠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내려놓고 ‘따뜻한 저녁 상’ 함께 먹는 마음으로 서로의 아픈 손도 잡아 주면 좋겠다. 그것이 인생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공동체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는가? 사랑하며 사는 것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어깨에 놓여진 하나님의 손이다.


박 성 근 목사
(로스앤젤스 한인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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