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2005-07-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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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엄마… 아버지의 매질과 버림…
갱단원돼 총맞고 죽기 직전 맞은 구원
감옥에서 ‘무기수 선교사’변신
수인 동생과 마지막 만남 “다음엔 천국서”

A는 무기수다. 높은 담, 쇠창살 아래 작은 감방이 그의 집이다.
젊은 나이에 종신형을 더블로 받았으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올 수 없다. 그의 유일한 가족은 두 살 아래 남동생이다. 동생 B도 지금 감옥에 있다. 서로 다른 감옥이라 만나지 못한다. 동생은 몇 년 지나면 출옥을 하지만 곧바로 한국으로 추방당하게 되니 두 사람이 살아서는 만날 길이 없다. B는 감옥에 있는 동안 통신강의를 통해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이 있던 날, 특별 면회가 이루어져 두 형제는 담장을 건너와 서로 얼싸안을 수 있었다.
형 A는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세 살짜리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가출한 엄마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어찌나 심하게 엄마를 때렸는지 견디다 못한 엄마는 둘째를 낳고는 어디론가 도망을 쳤다. A는 동생과 함께 전국을 떠돌았는데 다시 아버지에게 잡혀서 집에 들어간 두 형제는 며칠씩 가둬놓고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가출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결국 어린 시절을 거리에서 자라났다.
A는 어렸을 적부터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동생에게 들키지 않도록 빗속에 서서 맘껏 울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를 맞으며 엉엉 통곡을 하다보면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엄마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느껴져 서러운 마음을 쏟아내볼 수 있다.
십대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재혼을 하면서 함께 미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이곳에 와서도 매를 맞는 지옥 같은 삶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이 두 형제의 멍든 얼굴을 보았고 선생님의 신고로 당장 경찰이 아버지를 연행했는데 아버지는 이 과정에서 한국으로 도망간 이후 지금껏 연락이 끊어진 상태이다. 이때부터 A의 가슴에 쌓인 울분과 세상을 향한 분노가 그를 갱으로 내몰았다. 날마다 싸움과 총격과 마약에 빠져 살아가던 중에 상대편의 총을 맞았다. 그 자리에 쓰러져 피를 쏟으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그때에 A는 하나님을 만났다.
환상 속에서 똑같이 총을 맞고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눈부시게 흰옷을 입은 분이 나타나 그의 손을 잡아주며 이제 세상으로 나가라는 말씀을 들었고 바로 그때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며 구원의 감격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그 뒤로는 누가 마약 얘기만 해도 토할 것 같고 만신창이 되었던 온몸의 고통이 씻은 듯 사라졌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생수의 강이 흐르며 항상 기쁘고 마음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A는 감옥 안의 선교사다. 20년, 30년씩 중형을 언도받고 좌절하는 형제가 있으면 A가 다가가 호통을 친다.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도 주님 믿고 이렇게 기쁘게 살아가는데 너희들이 실망할 일이 무엇이냐! 인생을 포기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도 너를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왜 네가 너 자신을 포기하느냐!” 이렇게 말할 때 칼자국, 총탄 자국 난 A의 모습은 이 세상 누구보다 멋지다. 아니, 그를 변화시키신 하나님은 정말 멋지다.
A는 얼마 전, 평생 찾아 헤매도 만나지 못한 엄마 대신 양어머니 한 분을 만났다. 감옥선교를 하는 COR 미션(김운년 목사)의 김신화 사모가 두 형제를 수양아들로 삼았기 때문이다. 동생이 형기를 마치고 강제추방이 되면 살아있는 동안에는 두 형제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졸업식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눈물을 훔치는 동생을 향해 A는 밝은 음성으로 소리쳤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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