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2005-06-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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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유행하던 TV광고 중 모든 사람이 “Yes”라고 할 때 “No”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슬로건을 내건 광고가 있었고 책 제목도 있었다.
이 광고는 대 히트를 쳤고 당당한 신세대를 위한 새로운 경영 지침이 되기도 하였다.
않은 특수한 경우도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유교적 사상에 웃어른이나 사대적 권력 앞에서 “No”라고 하는 것을 굉장한 결례나 반항으로 배워왔다.
이러한 유교주의나 사대주의는 현대 사회에서도 예외 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분명히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권력 앞에서 ,그 사람 앞에 붙여지는 타이틀 앞에서, 또는 나이 앞에서 고개는 움츠러들기를 본의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 강요받는다.
한국 속담 중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말이 있다. 전근대의 공동체가 우선 되고 공동의 이익이 최우선시 되는 사회 속에서 혼자 튀고 개별행동을 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으로 통용되었다.
위계질서가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는 사회 속에서는 자기 혼자 나서는 일이 유교적 왕권에 대한 도전이자 반역의 기도로써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과 다른 사고, 아랫사람이 남보다 뛰어난 자질은 계급사회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자유, 평등의 기치를 명분으로 한 프랑스 혁명부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동학운동까지 시대의 흐름은 개개인의 존엄성과 평등, 남과 다른 특별한 개성, 뛰어난 개인 능력 반영으로 압축되어지고 있다.
이젠 모난 돌이 되어야 남과 다른 나만의 고유한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론과 동떨어져 있다. 여전히 ‘모난 돌은 정 맞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 앞에 예스맨이 된다. 그렇게 권력 앞에 사근사근한 선봉자가 막상 뒤돌아서면 대단한 욕쟁이로 돌변한다. 앞에서는 “네, 네” 두 마디 말 외에 이견이 없던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만 서면 열 마디, 스무 마디의 흉 쟁이로 바뀐다.
예스맨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자기 확신이 없어서 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가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일이 있기는 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일은 거의 없어야 이 사회는 잘 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물론 발등은 발등이 찍힌 것으로 끝이 나야 하겠지만….
우리 회사가 성장한 것도 누구 혼자만의 능력이나 노력은 절대 아니다.
특히 비위를 맞추려기 보다는 당당히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자기의 이익 앞에서 두 얼굴을 가지는 것은 특히 우리 같은 직업인으로서는 안 된다. 남의 재산을 이용해서 자기 재산을 늘리는 사람들은 대개 피신탁인 의무(Fiduciary duty)를 갖고 있다.
한 치의 이해도 양보도 안된다. 책임성의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에서 모습 다르고 뒤에서 모습 다르다면 그 사람은 비굴하다. 비굴한 사람은 큰일을 못하고 조직 내에서 분쟁의 씨앗이 된다.
젊고 열린 사고를 가지고 일하는 젊은이 들이라면 나는 당당해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뒤에서 딴 소리 하지 말고 앞에서 이건 아니라고 소신 있게 이야기 하라. 비굴한 자는 오히려 주변의 사람들 을 수렁에 빠트리는 악의 축이다.


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www.newstarrealty.com, ceo@newstarreal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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