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말 갤러리 앙리 마티스 작품 ‘탬버린을 든 오달리스크’

2005-06-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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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1869~1954)의 1926년 작품, 탬버린을 든 오달리스크(Odalisque with Tambourine)는 가로 36.25인치, 세로 25.625인치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로 패사디나의 노턴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에 소장돼 있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앙리 마티스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화가보다 뛰어난 색채 감각을 지녔다. 북프랑스의 르 카토에서 태어난 그는 법률학교를 나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지만 20세 이후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서 스승 귀스타브 모로를 만나 화가로 전향한다.


예술혼 지핀 불멸의 연인

강렬한 색채·개성적 표현에 생명력 느껴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원색, 개성적 표현이 꿈틀대는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슬람교와 비잔틴 예술 역시 그의 화려하고 독창적인 화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자주 여행을 떠났던 모로코의 강렬한 태양과 원색의 꽃들에 대한 감동도 작품에 자주 나타난다.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여자를 시중드는 궁녀, 또는 그 거처인 하렘의 정부를 뜻하던 터키어 오달리크가 프랑스로 옮겨지면서 오달리스크(Odalisque)로 오용된 것이다. 프랑스가 근동 지방으로 세력을 뻗어나가던 19세기, 동양에 관심을 둔 오리엔탈리즘 화가들에게 있어 금기의 장소인 하렘의 오달리스크는 관능미 넘치는 이국적 뮤즈였다.
서양 회화와 근대 나체화의 주요 주제였던 오달리스크를 회화에 있어 불후의 테마로 만든 화가는 앵그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1819년 살롱 전에 출품됐을 때 신고전주의 지지 평론가들이 인체 묘사를 왜곡했다며 혹독한 평가를 했던 작품이다. 길게 늘어진 척추와 좁은 어깨, 커다란 골반과 작은 발의 여인은 기형적인 만큼 관능적인 여성미가 넘쳤다.
프랑스 회화에 있어 오달리스크는 중요한 오브제로 자리 잡아 앵그레와 들라크롸, 르느와르 등 수많은 화가가 반복해 그렸는가 하면 1920년대 이후 마티스의 작품에서는 가장 중요한 테마로 등장하기도 했다.
프랑스 남부 니스 지방에 머물던 1926년, 이제 타오르는 열정의 거친 불꽃이 잔잔히 가라앉은 57세, 초로의 화가는 젖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관능적인 오달리스크를 그린다. 8년 전인 1918년 그렸던 ‘검은 숄-로레트’(The Black Shawl-Lorette VII)보다 색채는 더욱 화려해졌다.
온 몸이 훤히 비치는 의상 아래로 드러나는 그녀의 하얀 피부,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는 여성의 눈에도 매혹적이다.
주렁주렁 매단 목걸이와 겹겹으로 한 팔찌는 오달리스크들이 얼마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온 몸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철저히 자기 관리를 했는지 알게 한다.
그녀들은 여신과 성모, 귀족 부인의 뒤를 이어 화가들의 예술혼에 불을 지핀 불멸의 연인들이다.
곡선을 그리며 춤을 추는 댄서의 유연한 팔놀림을 보고 있으면 꾸밈음이 화려한 아라베스크가 귓전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
파란 배경에 그려진 빨간 패턴은 그녀가 춤추는 음악을 색채로 표현한 것처럼 율동감 있게 움직인다. 파랑 빨강의 모자이크 벽면과 대비를 이루는 핑크빛의 조화가 강렬하며 아름답다.
오달리스크의 오른쪽 발아래 물체는 터키 식 물 담배 파이프, 후카가 아닐까. 그녀 앞에서 폭신한 쿠션에 몸을 기대고 춤을 감상하는 술탄의 얼굴엔 나른한 만족의 미소가 퍼졌을 것 같다.
‘탬버린을 든 오달리스크’를 소장하고 있는 노턴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 Museum)의 주소는 411 W. Colorado Bl. Pasadena, CA 91105. 전화 (626)449-6840.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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