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드너가 된 목사님’

2005-06-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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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가 된 목사님’

나성영락교회 림형천 목사가 장미 가지치기 가드닝 작업을 하고 있다. <서준영 기자>

나성영락교회 목회자 14명
교인고충 체험 ‘세상 속으로’
최저임금 받고 1주일간 비지땀

“목사님, 장미 가지는 여길 이렇게 잡으시고요, 힘을 주어 단번에 가위질을 하셔야 싹둑 잘라집니다. 아니, 장갑은 어디 두셨어요? 항상 끼고 다니시라니 까요.”
14일 낮 행콕팍의 한 가정집 뒷마당, 나성영락교회 담임 림형천 목사가 한 눈에 보기에도 어설픈 자세로 장미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옆에서 코치하는 사람은 ‘강스 가드닝’의 강경수씨. 나성영락교회의 안수집사다.
목사님이 부업에 나섰나? 그게 아니라, 나성영락교회가 2년째 실시하고 있는 ‘더불어 세상 속으로’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삶의 현장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풀타임으로 일해 보는 이 프로그램에 따라 나성영락교회의 14명 풀타임 교역자들은 이번 주와 지난주 1주일씩 페인팅, 봉제공장, 꽃집, 식당, 무역회사, 모텔, 프리스쿨 등 교인들의 생업 현장에 나가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냥 일터를 방문하고 둘러보는 수준이 결코 아니고, 기도와 심방 같은 목회사역을 해서도 안 된다.
목사라는 신분을 접어두고 최대한 사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주 40시간 노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목회가 교인들의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면 진정한 목회를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교인들이 매일 어떻게 살고 있나, 직접 그 현장을 겪어보려는 작은 노력이죠. 또 교인들에게 교회 일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소명임을 깨닫게 해주려는 의미도 있습니다.”


세상속으로 간 영락교회 목사님들


“막노동이 목회보다 힘들어요”

가드닝·페인팅·서빙 등 몸으로 때운 일주일
“목회가 가장 쉬워” 겸손한 고백
주급모아 힘들게 사는 목회자 가정에 전하기로

지난해 봉제공장에서 실밥 뜯기, 옷 걸기, 짝 맞추기, 딜리버리 등 잔손가는 일들을 체험했던 림형천 목사는 올해 풀 뽑고, 가지치고, 잔디 깎는 가드닝 잡이 보기보다 수월치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일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죠. 가드닝 비즈니스는 매일 스케줄이 정해져있어 시간을 다투는 일이더군요. 정원 크기나 계약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한 집에서 후닥닥 30분만에 일을 마치고 다음 집으로 향합니다. 그러니 도착하자마자 장비 내리고 뽑고 깎고 자르고 모으고 담고 버리고… 이렇게 시간을 다투는데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전 6시부터 따라나서 벌써 열 집을 돌고 왔다는 림형천 목사는 ‘세상일’을 해보니 오히려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는다고 고백한다. 다른 목사들도 한결같이 하는 말, “목회가 제일 쉽더군요”
‘역지사지’라고, 이렇게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분쟁도 없고 이해 못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신도가 일주일만 목사님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고 배우는 것은 처음 림목사가 기대하고 계획했던 것 이상이다. 교인들의 생업 현장과 하루 일과를 직접 체험하는 것은 물론, 참여해본 비즈니스에 대해 폭넓게 배우게 되고, 한주간 함께 일하는 교인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서로의 인생을 나눌 수 있으며, 이러한 목사들의 노력에 대해 고마워하는 교인들의 마음 또한 소중한 수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와 분리된 성도의 삶을 이어보려는 노력.
“한국 교회는 교회와 사회를 너무 분리시키는 신학으로 크리스천들의 신앙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다들 교회 안에서 일하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일터에서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죠. 크리스천은 자신이 가진 직업과 터전이 바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입니다. 거기서 의미를 찾고 잘 살아가도록 교회가 격려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지난 주 패밀리 레스토랑인 ‘캐로우스’에서 일했던 강진웅 목사.
‘직장’이 너무 멀어서 출퇴근이 힘들긴 했지만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생업에 종사하는 성도들의 실제 삶을 경험하며 많이 배우고 재미있게 일했다”고 말한다.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여 메뉴를 건네고, 주문도 받고 계산도 하는 호스트로 일했던 강목사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다리 품을 팔았지만 백인 단골손님들, 히스패닉 종업원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패밀리 레스토랑 커뮤니티’를 익히는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무역회사 창고에서 물건정리하며 땀 흘렸던 김귀안 목사는 “마지막 날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헤어질 때 눈물이 났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오래전 신학교 다니면서 막노동하던 추억을 되새기며 열심히 일했더니 사장님으로부터 목회 그만 두면 매니저로 취직시켜주겠다는 잡 오퍼도 받았다”는 그는 “목회자는 아무래도 머리로 하는 일이 많은데 오랜만에 몸으로 일하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특별한 코멘트를 남겼다.
그러면 목사님들은 주급으로 얼마를 벌었을까? 2004년에 14명의 목회자들은 넉넉히 얹어주는 업주들의 배려를 사양하고 각자 최저임금 이하인 300달러 정도씩 받았으며 총 3,400달러를 모아 사모와 세자녀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한 목회자의 가정에 전달했다.
올해도 그 정도 ‘돈벌이’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림목사는 또 다른 어려운 이민목회자 가정을 찾아 목사님들의 땀과 수고를 전달할 계획이다.
“목사가 세상을 위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주 제한돼있습니다. 세상은 성도들이 바꾸는 것이죠. 목사는 성도들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 사람입니다”
림형천 목사의 마지막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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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안 목사가 무역회사 창고에서 물건 정리를 하고 있다(위). 식당 호스트가 된 강진웅 목사가 음료수를 준비하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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