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2004-12-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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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계신 하나님

근래 ‘통일은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분단된 민족의 하나 됨이 어찌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통일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분단 역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인식할 때에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으로 통일을 지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29). 그럴진대 어찌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한 민족의 분단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출애굽의 대역사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을 무려 4백 년에 걸친 이집트의 노예살이로 몰아가신 분 역시 하나님이셨습니다(창 15:13). 그 노예살이의 출발점은 야곱 집안의 이민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보낸 특별마차를 타고 야곱은 이집트 이민 길에 올랐습니다(창 46:5). 아들이 이집트의 국무총리였으니, 이집트를 향하는 그의 마음은 독수리마냥 마구 날아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이집트 노예살이의 첫걸음이었습니다. 혹독한 노예살이는 그들의 심신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정 사랑하시기에 인생 밑바닥에서부터 강인하게 훈련하신 뒤 가나안의 주인 삼아 주시려는, 위대한 출애굽의 대전주곡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만 인생의 최고의 절정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고, 최악의 질곡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절망함이 없이 하나님의 진정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극심한 좌우이념 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혼란에 영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좌나 우, 그 어느 한쪽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좌와 우, 그 위에 계십니다. 그분을 우러를 때에만 지난 대립과 갈등이 그분 안에서 합력하여 선으로 귀결될 것이요, 그분 안에서만 새해가 새해 될 것입니다.

<2004년 12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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