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괜찮은 정원사

2004-11-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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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베란다에 가득한 각종 화초들, 그것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가끔씩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때를 따라 적잖은 교훈과 위로를 나눠주는 작은 생명들, 허덕이며 달려와 한 해의 끝자락 즈음에 서있는 요즘은 청량한 가을 향기를 한가득 머금은 그들의 품속에서 웬일인지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알로에 선인장과 몇몇 나무는 별다른 돌봄 없이 때맞춰 물만 주어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 풍성한 잎을 피우고 꽃을 내며 제때에 열매를 맺는다. 원하는 사람들에게 분양할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운 마음이 된다. 남다른 관심을 주지 못했음에도 훌쩍 자라나 제 몫을 너끈히 감당하는 성도들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듣고 보고 배우고 깨닫는 대로 순종하여 신앙과 생활과 인격이 자라 가는 그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반면 작년에 심은 오렌지를 비롯한 몇 나무는 똑같은 정성으로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보살피는데도 가지와 잎이 너무 엉성해 열매를 맺을 수나 있을지 영 기운이 빠졌다. 참다못해 뽑아버리고 다른 것을 심으리라 생각하던 어느 날, 그렇게 헐렁하던 몸에서 놀라울 정도로 탐스럽고 예쁜 꽃을 불쑥 피우더니, 며칠이 지나자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탐스런 열매들을 쏟아내었다.
노심초사 애를 태우며 기다려도 이렇다 할 기미가 없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듣는지 먹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던 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칠 대로 지쳐 ‘아, 안되나 보다’ 포기하려는 순간, 불쑥 철든 소리를 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이들. 부족한 인내심 때문에 자칫 상처를 줄 뻔한 것이 미안하고, 점점 여물어 가는 모습을 보며 얻는 보람과 기쁨이 남다르다.
그런가하면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작은 난과, 앉은뱅이 선인장은 큰 기대를 갖고 배의 정성과 관심을 쏟았건만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전혀 자라날 기미가 없다.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기는 더더욱 글러버린 것 같다. ‘날 잡아 잡수쇼’ 버티는 모습이 영락없는 고집쟁이다. 그것들로 인해 약이 오르고 가슴까지 답답해질 즈음에 떠오르는 얼굴들. 다른 사람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일편단심 요동이 없는 특별한 사람들. 풀지 못한 숙제처럼 끝까지 아픔을 주고 진을 빼게 한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기에 더욱 애달프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괜찮은 정원사는 한 포기의 풀도 함부로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올 한해도 그렇게 견디게 했다. 모두가 심겨진 그 자리에서 쑥쑥 자라나 능히 자신을 세우고, 이웃들까지 돌볼 수 있는 건강한 생명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하나 같을 수는 없는 것, 각기 다른 모습을 여전한 사랑으로 돌보며 기다리는 ‘괜찮은 정원사’가 되기로 작정한다. 그러면서 지난 일년 동안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허물 많은 내 삶 속에 축복의 정원을 만들어 준 ‘괜찮은 정원사들’에게 이 가을의 단풍 빛보다 더 짙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

김 선 화
(복음의 빛 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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