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구제봉사

2004-11-12 (금)
크게 작게
연말을 상징하는 것들 중에 구세군 자선 냄비를 빼 놓을 수 없다. 바쁜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고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일년 내내 잠들어 있던 우리의 동정심을 깨워주는 구제의 종소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중에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은 구제였다. 초대교회의 활동 중에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커뮤니티 봉사였다.
기독교에 있어서 이웃을 사랑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분명한 의무이자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인교회들은 커뮤니티 봉사뿐만 아니라 교회 주위의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것에 너무도 인색하다. 많은 교회들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교회 유지비와 행사비로 지출하고 있지만, 일년 예산 중에 구제 봉사비가 얼마나 될까?
구제는 전도이다. 예수님도 불쌍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고쳐주시면서 전도를 하셨다. 크고 멋진 전도행사를 하는 것보다 교회 주위의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펼치는 것이 훨씬 더 효과 있는 전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이 교회 저 교회 떠도는 철새 교인들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 간절한 가난한 심령을 찾아가 주님의 이름으로 구제하는 것이 곧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이 아닐까. 나는 개신교 목사이지만,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역자를 뽑으라면 테레사 수녀를 뽑고 싶다. 자신의 삶보다 가난한 이웃의 삶을 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었기에.
구제는 선교이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야 선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불과 몇 블럭 발로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걸인들과 저소득층의 형제, 자매들에게 정성을 전달하는 것도 훌륭한 선교이다.
험한 정글 속에 갇혀 있는 부족이나, 공산권 정부의 탄핵을 피해 숨어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함 속에 소외되어 있는 자들도 우리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구제는 사랑의 실천이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실천이 없는 사랑은 시끄럽기만 한 꽹과리일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구제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구제는 그저 얼마간의 도네이션을 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직접 참여하는 행동을 포함한 봉사활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구제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성도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봉사하지 않는 교회는 세상의 빛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다. 각 교회마다 요즈음 한참 내년 예산을 짜고 있을 텐데, 꼭 부탁하고 싶다. 교회주위의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조건 없는 구제비를 좀 마련해 달라고. 지역교회, 커뮤니티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예산의 십일조를 구제비로 책정해 달라는 요구를 전하고 싶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이 용 욱 목사
(하나크리스천센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