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2004-11-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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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박기는 너무 어려워

하나님이 그래? 그럼 사람을 만들어 보거라. 과학자들이 그까짓 거 하면서 몸을 굽혀 흙 한 줌을 집어 올리자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아니, 내 흙 말고 너네 흙으로 만들어 보라니깐.


우리 집에 뭐가 고장나면 아이들은 제 엄마를 부른다. 신혼 때는 물론 몇 년이 지나도록 나는 아내에게 그런 재주가 있는 줄 몰랐었다. 전형적인 문과 출신 타입의 아내가 망치를 들고 드라이버와 송곳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다.
결혼 초, 하루는 부엌 형광등이 몇 번 깜빡거리더니 양 옆쪽으로 꺼멓게 색깔이 변하면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출근 전에 이것 좀 갈아 끼워주고 갈 수 있어요?” 아내의 부탁에 나는 우선 전기 스위치를 끄고 집안 전체 두꺼비집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아내가 그건 왜? 같은 눈으로 날 쳐다보았지만 나는 안전이 최고라는 점잖은 말로 가장의 권위를 지켜냈다. 전체 전원까지 끄고서야 나는 못쓰게 된 형광등을 뽑아내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장으로 두 팔을 뻗친 채 반투명 플래스틱 커버를 벗기는데 우선 30분이 지나갔고 마침내 형광등을 잡아 뽑으려다가 한쪽이 안 빠지는 바람에 또 30분을 잡아먹었으며 결국은 다 내팽개친 채 “이런 일은 핸디맨을 불렀어야지!” 호통까지 치고서 나는 사무실로 가버렸던 것이다. 저녁 때 집에 와보니 부엌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고 나는 당연히 누군가 와서 일을 끝낸 줄로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 후로 벽에 거울을 걸 일이 생겼는데 나는 캘리포니아 벽들은 망치질을 할수록 그렇게 엉터리로 부서져 내린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온 벽에 허옇게 못 자국만 수없이 뚫어놓았었다.
헐거운 블라인드를 고정시키려다가 창문틀까지 망쳐놓았으며 물새는 수도꼭지를 고친답시고 만지다가 파이프까지 갈아야 할 지경으로 엉망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환자 핑계를 대고 사무실로 내뺐다가 돌아와 보면 모든 것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나는 ‘으흐흠, 주신 은사가 각각인 것이야’ 하며 목에 힘을 주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장난감을 사러 갈 때마다 가장 먼저 따져보는 것이 조립이 필요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어른의 조립이 필요함이라는 사인이 있으면 아무리 좋은 장난감이라도 아이 눈에 안 띄게 진열대 뒤쪽으로 밀어놓았다. 어느덧 아내는 점점 나에게 귀찮은 집안일 부탁을 하지 않게 되었고 나는 나대로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즐기며 내무반은 여자 몫이라는 이론을 고수해 왔다.
최근 한 사이언스 잡지를 보니 몇몇 과학자들이 인간복제를 금하는 기독교 윤리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나서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전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만든 인간은 공기를 만들고 물을 만들고 있으며 생쥐와 양과 소를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나같이 못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 아니, 필요한 재료들을 다 주고 조립 요령까지 일러주어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다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잡지 뒤쪽, 과학 유머란에 실린 스토리 하나가 맥 못추는 나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있다. <어느 날 과학자들이 하나님을 찾아가서 말했다. 이젠 그만 우주를 떠나주셔도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라면 우리도 뭐든 다 만들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러자 하나님이 그래? 그럼 사람을 만들어 보거라. 과학자들이 그까짓 거 하면서 몸을 굽혀 흙 한 줌을 집어 올리자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아니, 내 흙 말고 너네 흙으로 만들어 보라니깐.> 누구는 생명을 만든다고 난리인데 나는 못질도 무섭다. 그러길래, 은사는 각각이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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