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닭고기 200파운드를 다듬어서

2004-11-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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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인에서 가까운 라구나 비치는 가파른 언덕 때문에 바닷물에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철 따라 피는 꽃과 비스듬히 선 자연수사이로 파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언덕의 굴곡을 따라 만든 벤치와 피크닉 테이블은 지나가는 산보객과 소풍객들의 쉼터가 되고 산보길 중간쯤에 자리잡은 정자에서는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인다.
이곳은 특별히 석양이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저녁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그 중에 이색적인 풍경은 머리가 하얀 할머니들이 힘겹게 음식을 나르고 건장해 보이는 젊은이들은 줄서서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홈리스 프로그램이다.
홈리스는 꼭 집이 없고 가난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 소속감을 못 느끼어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사는 사람들이다. 매년 미국에서만 230만∼350만의 사람들이 홈리스 경험을 하고있는데 그 중 23%가 전쟁을 치른 재향군인이라고 한다. 홈리스의 반은 알코올과 마약중독에 시달리고 있으며 45%정도는 신체 또는 정신적인 병 때문에 거리에서 살게 된 사람들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준 가정, 사회, 국가의 책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회복지기관과 교회에서는 이들을 위해서 많은 활동과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속한 그레이스장로교회는 15년째 COA(Christian Outreach in Action) 프로그램으로 롱비치 부근의 홈리스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인근 15개 교회가 힘을 합해 홈리스를 위한 아파트들을 장만하여 아이를 가진 여자들이 임시로 살면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있으며 새 삶을 찾고자 하는 남자들을 돕고 있다. Food bank, Cloth Bank를 만들어 수시로 필요한 음식과 옷을 가져가도록 모아주고, 매일 200명에게 저녁식사와 100명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달 두 번째 화요일마다 십 여명이 모여 음식준비를 한다.
내가 하던 일은 닭고기를 다듬는 일이었다. 얼린 200파운드의 닭고기를 녹여서 기름을 떼어 내고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놓으면 옆의 분이 맛나게 양념한 바비큐소스를 발라 오븐에서 구워 낸다. 다른 팀은 여러 가지 채소를 썰어서 샐러드를 만들고 또 다른 팀은 교인이 만들어온 후식을 챙겨 홈리스 셸터로 가져가서 서브한다. 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면 언제고 Judy (714-527-5853) 혹은 이광자(562-760-2309)에게 연락하시면 같이 일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배고픈 사람에게 단순히 음식을 나눠주는 차원이 아니라 따뜻한 음식에 정성과 사랑을 담아 대접함으로 이들 마음속에 얼어붙은 앙금을 녹이어 새 생활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일년간 내가 관심을 두고 참여했던 미 장로교 소속 교회인 우리 교회활동을 소개했다. 이 모두가 극히 작은 나의 시간을 써서 큰 보람을 느끼었으니 봉사라고 시작은 했지만 남에게 베푼 것보다 내가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음을 고백한다.

김 준 자
(그레이스제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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