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부동산을 통해 본 삶의 단면 ‘

2004-10-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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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부부가 합의의 마지막 단계로 전에 같이 살고 있던 집의 리스팅을 내놓으려고 했다. 전 부인이 리스팅 에이전트를 데려왔는데 남편도 자신의 리스팅 에이전트를 데려왔다. 서로 리스팅을 경쟁심에서 리스팅의 조건을 놓고 에이전트들 간 언성이 높아졌다. 옆에 있는 전 남편과 아내도 서로의 에이전트를 두둔하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다 보니 대화가 언쟁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어느 정도 진정하고 에이전트들이 나간 자리에서, 남편이 이혼한 후 결혼한 현 부인이 나타나서 전 부인과 언쟁을 시작했다. 서로의 감정 상태가 과열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그날은 결론 없이 모두 헤어졌다. 이혼한 두 부부의 아이들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관여가 되어 있지 않았던 필자는 그 자리에서 삶이 보여주는 비극의 한 단면을 목격했다.
이혼은 당사자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 헤어짐에 연관된 가족들, 이혼으로 파생되는 재산 분리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 아픔을 남긴다. 위의 커플들도 하나하나 놓고 보면 다 착하게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로서 다만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여 깊은 상처를 입은 경우이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그 부부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 친척, 친구 심지어는 그것에 연루되어 있는 부동산 에이전트에게도 슬픔의 흔적을 남긴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부동산 에이전트로서도 이혼으로 인해서 부동산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보다 두 부부가 서로의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한 집에서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을 희망해 본다. 에이전트로 비즈니스를 얻는 것도 좋지만 삶에서는 돈보다 더 귀중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관계이다. 그 관계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부부인 듯 하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 이혼을 하고, 남편 혼자서 살고 있는 집을 팔아본 적이 있다. 집에 있는 모든 가구가 없어졌지만 남자 혼자 살고 있는 집은 너무나 어수선했다. 쓰레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뭔가 있어야 될 것이 없는 듯한 텅 빈 공허감이 집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침대도 없고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소파는 그 남자가 잠자리로 사용한 듯 하였다. 까무잡잡하게 더럽혀진 소파에 깊게 절어있던 것은 먼지 때가 아니라 깊숙이 자리 잡은 고독이었다. 수북히 쌓여있는 뜯지 않은 편지들과 오랜 기간 설거지를 하지 않아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는 싱크대의 그릇들은 주인의 정지된 삶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 집을 젊은 부부가 구입하여 마루, 커튼, 페인팅 등 모든 것을 수리한 후, 초대를 받아서 가봤다. 새로 단장된 집에서는 인생을 활기차기 함께 시작하려는 젊은 부부의 풋풋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집에서의 삶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역동하고 있었다. 집은 그냥 우리가 사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관계를 대변해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그 관계의 비결은 부동산 매매를 성공적으로 많이 하신 분의 비즈니스 철학에서 엿볼 수 있다. 그 분은 조금 손해 본 듯이 팔고, 조금 비싸게 준 듯이 사면 큰 이득은 빠른 시일 안에 못 얻을지 몰라도 길게 보면 성공하는 길이라고 하였다. 서로에게 조금만 손해 본듯이 양보를 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존심이 조금 깎이고, 가사일도 조금 더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희생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지된 삶으로 인해 주택을 매매하는 것보다 몇 만 배 이득이다.

정학정
<뉴스타 부동산 부사장-토랜스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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