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2004-0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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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없이는 못 타는 차

“사모님, 한국일보에 글 쓰신다죠? 저희 차 얘기 좀 써주세요. 아시죠? 협동 없이는 못 타는 차”
이게 무슨 소리일까. 협동 없이는 못타는 차라...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아하, 드디어 상황이 접수되었다. 낯선 미국 땅에 아내와 어린 자녀를 덩그마니 남겨놓고 회사 일로 외국에 나가 4년여를 지내다 지난달에 귀국한 제임스 아빠, 지금 자신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 얘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니카라과에 가고 없는 동안 그의 아내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어려운 시간을 씩씩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사고가 나서 아무 보상도 없이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버려야 했다. 당장 아이들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얼마 전 전도사님이 새 차를 사면서 가족들이 모두 나가면 발이 묶여 꼼짝 못하는 나에게 자신이 타던 차를 주신 생각이 났다. 많이 낡았지만 굴러가는데는 지장이 없어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었는데 급한 대로 그것을 주어버렸다.
얼마동안 잘 타고 다닌다 했더니 웬걸, 또 다시 접촉사고가 나서 오른쪽이 왕창 찌그러졌다. 수리도 못한 채, 이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남편이 돌아온다니 걱정이 앞섰다. 당장 새차를 구할 형편이 못되니 당분간은 험상궂은 저 차를 타야할텐데 창피하고 불편하다고 맘 상하면 어쩌나 싶어서.
그러나 오늘 아침 그 모든 걱정이 날아가 버렸다. 말인즉, 찌그러진 오른쪽 앞 뒤 문짝이 밖에서는 열리지를 않아 꼭 누군가 운전석으로 들어가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그것도 안에서만 해서는 안되고 안과 밖에서 동시에 손잡이를 올려야만 열린다는 것이다.
내릴 때도 역시 마찬가지고. 그야말로 두 사람이 협동하지 않으면 도저히 탈 수 없는 기막힌 자동차, 혼자 살 수 없는 인생임을 다시 깨닫게 해주고, 그럼에도 잘 달려주는 자동차가 참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결혼 초부터 떨어져 지낸 세월이 길어 서로 사랑하면서도 가끔씩 조화를 이루지 못해 본인은 물론 보는 이들도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다 낡은 똥차를 통해 기막힌 사랑 법을 배우다니, 나는 재미있는 하나님을 향해 손가락 V를 날려보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더 좋고, 더 편하고, 더 그럴 듯한 것들을 갖기 위해 애를 쓴다. 고생과 어려움은 무조건 싫고, 그것을 기회로 삼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 특히 형편이 어렵고 힘들 때면 좋았던 관계도 어그러지기 십상인데, 그 불편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복을 누림인가?
살아가노라면 여전히 힘든 일을 만날 것이고, 더불어 지금보다 더 좋고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되겠지. 어찌 되었든 그 모든 순간에 ‘협동 없이는 못 타는 차’로 인해 서로의 귀함을 깨닫고 가슴 따뜻했던 오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든 세상을 나와 함께 살아갈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겸손하게 섬김으로 늘 행복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김 선 화
(복음의빛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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