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2004-09-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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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이의 진보

우리 동네 종윤이는 일곱 살짜리 귀여운 사내아이입니다. 몇 년 전 유학 길에 오른 엄마를 따라 프랑스에 간 종윤이는 방학이면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한국말이 약간 서툰 종윤이의 한국어 표현은 듣는 이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곤 합니다. 물론 이번 여름방학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 처가 종윤 엄마와 ‘글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습니다. 종윤이가 자꾸 ‘감자 후레낑’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제 처도, 종윤 엄마도, ‘감자 후레낑’이란 생판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혹 감자로 만든 무슨 음식인가? 알고 보니 축구경기의 ‘간접 프리킥’이었습니다.
어느 날 종윤이가 ‘무한대’란 말을 배웠습니다. 아빠가 종윤이에게 물었습니다. “무한대가 무슨 뜻이지?” “더 이상 셀 수 없는 거야.” “그럼 무한대보다 더 큰 수가 있을까?” “응.” “그게 뭔데?” “무두대!” 그 말을 듣고 이번에는 제가 물었습니다. “그 다음은?” “무세대.”
종윤이가 아빠 엄마의 친지들과 함께 자동차로 지방 여행을 갔습니다.
맑은 밤하늘엔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그 광경에 감탄하자 종윤이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밥을 적게 먹은 구름이 홀쭉해져서 별들이 많이 보이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엄마가 종윤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종윤아, 너 정말 시적이다!”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종윤이가 곧 반발했습니다. “100점을 줘야지 10점이 뭐야?”
이처럼 지난 방학에 비해 종윤이의 표현력은 월등 진보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런 대화는 가능치 않았습니다.
날로 진보해 가는 종윤이가 다음 방학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더 높고 깊은 차원의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 앞에서 날로 진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보하는 만큼 하나님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말이 통하는 우리로 인해 더 큰 즐거움을 누리실 것입니다.

<2004년 8-9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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