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함께 웃고 울며 굴레벗어”

2004-09-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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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선교회가 사태가 연일 머릿기사를 장식했던 지난 3월 한 독자가 전화를 했다. “나눔선교회를 돕고 싶은데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서요. 선교회 대표라는 김영일 목사가 돈이 많다면서요? 베벌리힐스에 집이 있다는데, 그거 팔아서 선교회 살리면 안됩니까?”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무조건 도와주십시오. 오랫동안 지켜봐 오면서 나눔선교회에 대해서는 전적인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선교회도 김영일 목사가 사재를 털어 세웠다고 하고, 이제껏 운영하면서 다른 선교단체와는 달리 한인사회에 손 내민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커뮤니티 전체가 꼭 필요로 하는 사역을 하는데 한 개인이 집 팔고 재산 내놓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눔선교회의 ‘큰 아버지’ 김영일 목사(60). 지난 8년동안 한결 같은 열정으로 선교회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늘 궁금했다. 이렇게 조용하고 점잖은 ‘선비’ 스타일 목사님이 왜 마약갱생이라는 험한 특수사역에 몸담게 되었을까, ‘작은 아버지’ 한영호 목사는 자신이 마약중독의 늪에 빠졌던 고통스런 과거를 딛고 일어나 사역에 뛰어들었지만, 한번도 인생의 정도를 벗어난 적이 없는 김목사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고달픈 목회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그리고 정말 베벌리힐스에 집이 있는걸까? 뒤늦은 감이 있지만 독자의 질문에 답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김목사의 개인 스토리가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거기에는, 이제 불과 6개월도 안 됐는데, 뜨거웠던 한인사회의 관심과 후원이 많이 식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한몫 한 것이다.

청소년 마약·갱선도 대부 나눔선교회 대표 김영일 목사

△목사님 자신에 대한 소개를 좀 해주십시오
▲늦깎이 목사입니다. 69년 유학차 도미해 USC에서 공부하고 뉴욕으로 이주해 회계사로 일하면서 기프트 스토어도 운영하고 스왑밋 관리도 하며 돈을 쏠쏠히 벌었죠. 그러나 오랜 신앙의 방황을 거쳐 회심하고는 신학공부하러 다시 LA로 왔습니다. 탈보트 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92년 목사안수를 받았죠. 그 후 텍사스의 개척교회와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새소망장로교회에서 일하다가 96년 나눔선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베벌리힐스에 집이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하군요. 뉴욕에서 옮겨올 때 가져온 돈으로 웨스트 LA에 22만달러를 주고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학교 문제로 주소를 빌려 베벌리힐스 고교에 보낸 것이 탈이 났어요.
거주지가 들통이 나서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지요. 그 때 아는 부동산 에이전트가 헐값에 나온 베벌리힐스의 집을 하나 보여주었습니다. 윌셔와 라시에네가 부근의 3베드룸 하우스인데 워낙 낡고 헐어서 85년 당시 23만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거기서 애들 셋 공부시키고 아직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베벌리힐스 저택’이라면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집사람이 고생 많이 했어요. 내가 파트타임으로 거의 10년이나 신학공부하는 동안 세 아이 키우며 뒷바라지하느라 어렵게 살았습니다.
△신앙의 방황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과정이었습니까?
▲모태신앙을 가졌지만 교회에 대한 회의가 많았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인 죄의식의 갈등이었죠. 유혹이 많고, 문화적 갈등도 많은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은 아무런 만족이나 자유함을 주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는 현대의 교회들은 모두 현상유지에 급급하며, 커뮤니티 교회가 아니라 출퇴근하는 교회(commuting church)라는 부정적 생각이었지요. 운전을 하여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다니는 시대이니 만큼 철새교인이 많고, 제자훈련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교회가 수도 없이 많으니까 여기서 훈련받기 싫으면 저기로 옮기면 되거든요. 그래서 한때 몰몬교회도 다녀보고, 교회를 등지기도 했던 회의와 방황 끝에 어느날 삭개오와 같은 내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게 되었고 신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눔선교회는 어떻게 출발되었는지요
▲부목사 시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회교육 프로그램의 허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들은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청소년 담당전도사는 거쳐가는 자리라, 1년이 멀다하고 바뀌는게 현실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제대로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겠습니까? 게다가 청소년 마약, 섹스, 갱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진정한 ‘선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무조건 해외로 나가는 선교가 아닌 내가 오래 살아온 이곳 미국 LA,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위한 선교 말이죠.
△한영호 목사, 김성신 전도사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만났습니까?
▲새소망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 당시 전도사였던 한목사와 의기투합해 함께 사역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비영리단체 등록을 하고 돈을 모으면서 우리도 주머니 돈을 내놓아 선교회를 만들었지요. 그러나 ‘사재를 털었다’고 할만큼 많은 돈은 갖고 있지도 않았고 몇만달러 정도 넣었습니다. 김성신 전도사는 한영호 목사와 장로회 신학교 동창이라 함께 일하게 되었지요.
△중독자들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왜 하필 공동체 사역을 택했나요?
▲한영호 목사와 함께 가정방문을 다니면서 마약갱생사역은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마약을 끊는 일은 생활의 리듬, 즉 생활습관 바꿔야만 되는 일이에요. 습관은 어릴 때부터 형성되는데 그것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부모들입니다. 부모들은 약만 끊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마약은 ‘생활의 문제’입니다. 일주일에 한두시간 카운슬링으로 될 일이 아니죠.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가족공동체가 되어 교육하고 훈련시킴으로써 습관의 변화, 생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생각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정말 맞는 방법이었습니다. 특히 2세 아이들은 미국 재활기관에서 적응하지 못해 뛰쳐나와서 다시 마약에 빠지는 일이 많아요. 그런 아이들 우리가 거둬야죠. 영어를 해도 김치는 먹어야 되더군요.
△선교회에서 함께 숙식하며 생활하십니까?
▲일주일에 2~3일은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잡니다. 나머지 3~4일은 한영호 목사가 함께 자고, 나도 밤 12시까지 머물며 아이들을 재워놓고 나오지요.
△문제 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겠습니다
▲공동체 훈련이란 원칙대로, 규정대로, 법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나눔의 경우 그 원칙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원생들에게 이 원칙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강요도 하며 때론 벌도 줍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에 따라 부작용도 생기는데 사람이 다르다고 법을 바꿀 수는 없다는 고충이 있어요.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눔선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원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만으로는 사역이 완성되지 않거든요. 개인이란 가정의 산물이며 사회의 산물이므로 가정이 바뀌지 않고, 서포팅 그룹이 없으면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주 부모를 위한 가정세미나(토)와 부모기도모임(화)이 생겼고, 앞으로는 개인 치유사역을 위해 노동현장도 만들어줘야 하는 등 사역이 자꾸 번져가는데 적절한 사역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선교회 안에서도 매일 큐티와 성경공부, 예배, 저녁기도회를 인도할 사람이 부족하지만 목회자라고 아무나 자원해서 될 일도 아닌 것이 우리와 사역방향이 같아야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현재 나눔선교회 건물의 보수작업은 어디까지 와있습니까
▲블루 프린트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청사진이 나와야 공사기간과 예산 액수를 알 수 있어요. 빠르면 이달 말게 공사가 시작될 것도 같은데 이 일로 후원회가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한인사회의 후원금도 50만 달러가 넘었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글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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