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2004-08-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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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좋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기술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칼렉시코 국경 지역을 넘어 멕시칼리로 들어선 것은 밤 아홉시 경. LA 지역의 크리스천 의료인을 중심으로 우리 팀 일행 스물일곱명이 멕시코 지역으로 단기 선교를 떠나왔다.
일곱여덟 시간 넘게 갇혀 있던 버스에서 내리니 한 여름 밤의 더위가 후끈하다. 화씨 120도다. 내일 아침부터 이 지역에서 펼칠 여러 가지 선교 활동에 대한 준비를 점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더우니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언젠가 1월에 중국 선교를 갔을 때는 섭씨 영하 30도까지 내려가서 꽁꽁 언 추위로 시달렸는데 이번엔 무서운 더위다.
추위든 더위든 ‘여기에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를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이번 여행길에 동행한 닥터 한은 내과 의사이자 방사선과 의사이다. 지난해에 네팔로 선교 여행을 다녀왔는데 치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치과 진료의 어씨스턴트로 함께 따라나선 길이다. “그때 한 환자를 보게 되었지요. 입을 감싼 채 아프다고 펄펄 뛰는데 입 속을 들여다보니 모든 이가 남김 없이 다 썩었어요. 치과 의사만 있으면 될텐데.......하는 수 없이 환자를 끌어안고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습니다”
닥터 한은 그 뒤로 기도하며 치과를 공부했다. 이번 여행길은 그 실습과정이 되는 셈이다.
이튿날 아침부터 우리는 마약 환자 갱생원과 교도소 등을 돌며 진료에 나섰다.
닥터 한도 옆에서 열심히 환자 보는 일을 돕는다. 마약 관련 범죄로 수감된 청소년 수용시설에는 약 120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나이는 12세부터 18세까지.
열두살 된 아이가 벌써 마약에 노출된 것도 놀랍지만 마약 사용 외에 운반이나, 소지, 판매 등의 범죄에 가담하여 소년원에 들어온 것도 안타까웠다.
그들 대부분이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치아 건강은 형편 없어서 우리 팀은 그들 전부를 치료해 주어야 했다. 어린 마약 환자들 가운데 몇몇은 마주 대하는 눈빛이 맑고 순수하다. 도무지 범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순진한 얼굴이다.
옆에서 돕고 있는 닥터 한도 그들 하나 하나를 붙들고 기도하며 진료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 이분은 이번 가을에 이디오피아로 선교 여행을 떠나는데 그때를 위하여 한 가지라도 더 익히려 애를 쓴다.
“그곳에 가면 한 장소에서 3일씩 머물게 됩니다. 첫날은 내과 진료를 하고 둘째 날엔 치과 진료, 셋째 날에는 이발사로 일할 계획입니다.”
닥터 한은 동행한 의료팀 모두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기술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1)
그랬다. 나의 치과 기술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 지라도, 또한 내가 아무리 세상 끝까지 달려가 의료 선교에 나선다 할 지라도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사랑이 없으면 나는 빈 꽹과리 소리만도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닥터 한은 더위로 지쳐가는 오후 시간에도, 잠을 설치는 밤 시간에도 일어나 기도하며 우리들을 격려했다.
세상이 이런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다면, 그리고 이 사랑이 누구나의 가슴속에 전해진다면 섭씨 120도의 더위라도 나는 좋아. 언제라도, 어디라도 달려가야지.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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