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니 이름이 뭐니?”

2004-08-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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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캐나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국으로 이민오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직도 캐나다에서 전화를 하는 거란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캐나다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어 미국 이민은 접기로 했단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라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고 있는데 갑자기 그 친구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하기야 내가 먼저 전화를 걸때 외에는 이름을 부를 이유가 별로 없으니까 그렇겠지만 이렇게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하는 수 없이 “그런데 니 이름이 뭐지?” “은경이다, 은경이” 기가 막혀 하는 목소리였다.
건망증이기에는 너무 심하고 치매 증세라고 하기에도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이 증세. 얼른 생각난 것이 혼수상태 후유증이 아닐까? 두 번씩이나 의식이 왔다갔다한 것 때문으로 모든 증세를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막내가 의아해 하며 질문을 한다. “엄마, 도대체 누구기에 이름을 물어보는 거야?” “초등학교 친구야” “그런데 왜 이름도 몰라?”하는 질문에 그만이야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끊어질 줄 모르게 계속되는 웃음은 오랜만에 내장 마사지를 받는 듯 하였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사역으로 만난 동역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이가 드니 눈이 흐려져서 안경을 새로 해야겠단다. 돋보기를 껴야 하나 아니면 졸보기를 다시 껴야 하나 서로 이야기하다가 사모님도 안경을 끼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번에는 내 쪽이 어이가 없어하게 되었다.
아니 자주 만나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되물었다. 며칠 전 친구에게 이름을 물으며 폭소를 터뜨린 이야기를 하며 이번에는 안경을 끼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며 배꼽을 잡게 되었다.
요즘 들어 웃을 일이 별로 없는 나의 생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면 이 정도의 건망증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엉뚱한 질문이면 어떻고, 황당한 질문이면 어떠냐? 오랜만에 내장이 시원하리만큼 웃을 수가 있다면.

황 순 원 (CMF사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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