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더 이상 여기 안 살아’ (We Don’t Live Here Anymore)★★★★½(5개 만점)

2004-08-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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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여기 안 살아’ (We Don’t Live Here Anymore)★★★★½(5개 만점)

친구 아내 이디스(네이오미 와츠)와 정사를 나눈 잭(마크 루팔로)의 눈동자에 좌절감과 허무감이 가득히 고여있다.

애정없는 두쌍의 부부 ‘맞바람’결론은…

결혼에 관한 살벌하도록 사실적이요 솔직한 해부로 두 쌍의 간통자들을 통해 기혼자들의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과 자유와 욕정에 대한 갈망간의 맹렬한 충돌을 가차없이 발가벗겼다.
여기 나오는 서로 친구이자 남편들인 두 남자는 자기 아내들의 간통 방조혐의자들이다. 그들은 시궁창이 되어버린 결혼생활에 대한 좌절감과 자신들의 불륜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서로의 아내가 바람 피우는 것을 묵인하다 못해 은근히 사주한다.
그들의 아내들도 마찬가지. 그것이 욕정 때문에서든 또는 불행한 숨막히는 결혼생활 때문에서든 아내들도 간통을 하는데 이처럼 두 쌍이 서로 상대방을 바꿔서 혼외정사를 하면서 일어나는 가정생활과 마음의 후유증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절실해 보는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작품 속의 사람들은 별 특색이 없는 보통 사람들인데 그들이 불륜과 비도덕, 기만과 배신을 행하면서 주저와 상심, 원망과 죄의식에 시달리고 또 분노하고 갈등하면서 속죄와 구원과 화해를 위한 시도를 하느라 심신이 시어빠진 파김치처럼 되는 모양을 보자니 반드시 남의 일만도 같지 않다. 그러나 감독은 이들을 결코 심판하지도 않고 또 손쉬운 해답도 내놓지 않는다. 결혼문제에 무슨 속시원한 해결책이 있겠는가. 영화는 끝에 가서 일말의 희망도 보여주지만 결코 마음이 가뿐해지질 않는다.
어느 한 여름 미 동부의 작은 대학촌이 무대. 주인공들은 둘 다 교수로 친구간인 잭(마크 루팔로)과 행크(피터 크라우스). 그리고 이들의 아내인 테리(로라 던)와 이디스(네이오미 와츠). 두 쌍 중에서도 가장 뚜렷이 묘사되고 있는 것이 두 남매의 아버지로 불행한 결혼생활 (그 이유가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을 하고 있는 잭.
둘 다 수염을 기른 수수한 모양의 잭과 행크는 모두 자기도취형으로 결단력이 부족한 내면이 약골인 전형적인 지성인들이다. 둘 중에서도 특히 작가인 행크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인데 그는 이런 결단력 부족과 이기심 때문에 이디스의 간통을 묵인하다가 뒤늦게 화해를 시도하나 이미 때가 늦는다. 속죄와 구원도 타이밍이 있게 마련인데 행크보다 강한 잭은 뒤늦게나마 결단력을 발휘, 사랑을 포기하면서 엉거주춤한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
잭과 이디스의 간통은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행크와 테리의 그것은 대사로 표현된다. 잭은 자신의 죄의식을 경감시키는 수단으로 테리와 행크간의 관계를 사주하다시피 하고 테리는 반발로 남편에게 자기와 행크간의 행위를 낱낱이 보고 하나 잭은 별무반응이다.
그리고 둘은 툭하면 대판싸움을 한다. 이 통에 아이들까지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잭과 이디스는 단순한 욕정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테리는 더욱 분하고 좌절감에 시달린다.
네 사람은 모두 서로의 불륜을 빨래처럼 내다 걸고 멀거니 쳐다보고 있는 상태인데 그들이 겪는 갈등과 고통에 묘약이 따로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새삼 절감케 하는 진지한 영화로 뛰어난 앙상블 연기와 지적인 각본과 연출이 훌륭하다.
특히 루팔로의 절망의 심연에 빠져 허덕이다 모든 것을 털어 버리는 듯한 안타까운 연기와 와츠의 투명한 연기가 아주 좋다. 존 쿠란 감독.
R. LionsGate. 아크라이트(323-464-4226), 그로브(323-692-0829), 샌타모니카 브로드웨이 시네마(800-FANDANG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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