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즐거워라, 수양회

2004-08-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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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누운 것 같은데 어느새 기상 벨이 울리더라구요. 깜짝 놀라서 옷을 주워 입는다고 침대에서 펄쩍 뛰어 내려갔지요. 2층 침대에서 잔걸 깜빡 잊고 그냥 방바닥인줄 알고 딛었더니 뚝 떨어지데요.

그 집사님은 무슨 일을 맡겨도 열심이다. 멸사봉공, 살신성인은 다 그분의 열심을 두고 하는 표현일 것이다. 말을 해도 열정적으로, 일을 해도 신나게, 왓핫핫 웃을 때면 방이 떠나가게, 에너지가 흘러 넘쳐 옆 사람까지 즐겁다.
며칠 전 우연히 음식점에서 그분을 만났는데 웬일이지? 팔목에 깁스를 대고 불편하게 왼손으로 국물을 뜨고 있었다. “아니 어쩌다가?” 묻는 내게 집사님은 “제가 지난주에 중등부 수양회에 봉사를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거기 갔는데 글쎄, 왓핫핫.....”
사연인즉, 어느 날 수양관의 봉사자 숙소 2층 침대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일을 했는데 사흘 째 되던 날은 어찌나 피곤한지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방금 누운 것 같은데 어느새 기상 벨이 울리더라구요. 깜짝 놀라서 옷을 주워 입는다고 침대에서 펄쩍 뛰어 내려갔지요. 2층 침대에서 잔걸 깜빡 잊고 그냥 방바닥인줄 알고 딛었더니 뚝 떨어지데요.”
내가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장로님 한분도 수양회에 갔다가 낭패를 당했다. 밤늦게까지 찬양하고 기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취침 시간이 되자 모두들 피곤한 몸을 누인다고 숙소로 들어가고 장로님은 좀 더 남아 기도를 하기로 했다.
건물마다 어느새 불이 다 꺼지고 빅 베어 깊은 산 속의 수양관 주변에는 온통 깜깜한 밤이 찾아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사방은 울창한 수목으로 가득하고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건물 뒤편으로 나있던 오솔길을 더듬어 걸으며 장로님은 깊은 밤, 평안한 고독의 시간을 누린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다. 풀벌레 소리도 잠잠하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찬송가 499장) 이제는 나도 들어가 눈을 좀 붙이리라, 생각하며 다들 곤히 누워 잠든 숙소로 살금살금 들어가 빈 침대에 몸을 눕힌다. 단체 숙소인 20명 정원의 통나무 캐빈은 솔향기로 가득하다.
이튿날 아침, 장로님은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깨었다. 바로 옆 침대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권사님! 잘 주무셨어요?” “권사니이임! 제 블라우스 뒤에 지퍼 좀 올려줘요. 살이 쪄서 안 올라가네!” “이 립스틱 색깔 어때요? 호호호 너무 야한가?” 아니, 이게 어찌된 셈일까? 웬 여자들이? 으악! 간밤에 여자 숙소로 잘못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은 장로님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중에 장로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어쩝니까. 할 수 없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다들 방을 나갈 때까지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습니다.”
뭐니뭐니 수양회의 하이라이트는 성극 공연이다. 한번은 청년부 수양회 때에 한 형제가 막달라 마리아 역을 맡기로 되었다. 워낙 여자처럼 피부도 하얗고 인물이 빼어났던 이 형제는 집에서 준비해간 누나의 화장품으로 새빨갛게 입술도 칠하고 눈썹까지 붙였다. 머리에 알록달록 스카프를 두르고 누나의 가슴 패인 드레스까지 걸치니 영락없이 회개하기 전의 막달라 마리아다. 공연 시작 5분 전. 아까 급히 마신 우유 탓일까. 막달라 마리아는 급작스런 변의를 느끼고 남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미친 듯이 거추장스런 치맛자락을 올리며 들어서는 형제를 보고, 이미 들어있던 수양관 측 미국인 직원이 빙긋 웃으며 한마디를 던진다. “아가씨,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잘못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수양회 많은 8월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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