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고속도로에서 생긴일

2004-08-06 (금)
크게 작게
지난주에 샌디에고에서 열린 목회자 가족 수양회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다. 바다를 끼고 죽 뻗은 도로로 달리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만 같았다. 첫날은 세미나를 듣고 그 다음 날은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추억에 남을만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짧은 여행을 마치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과 즐거웠던 기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남편이 피곤해 하는 것 같아서 잠시 눈 좀 붙이라고 하고, 대신 내가 교대 운전을 하다가 생긴 일이다.
샌디에고에서 LA 방향으로 올라오는 길에 모든 차량을 검문하는 장소를 지날 때였다. 아이들은 보채고 화장실이 급하기도 해서 어디든 빨리 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마침 검문소를 지나기 전에 도로 위에 카풀(car pool) 표시인 다이아몬드 사인이 눈에 번쩍 띄었다. 잘 됐다 싶어 오른쪽으로는 길게 밀리는 차들을 제치고 왼쪽에 쫙 뚫린 카풀 레인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섰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면서 밑에 조그맣게 씌어진 글이 보였다. PAL ONLY!
상황판단을 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앞에서 경찰들이 차를 세우는 게 아닌가. 사실 우리 차 말고도 앞에 뒤에 꽤 많은 동지(?)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그 많은 차들을 다 세운 다음에, 하나씩 티켓을 주는 것도 모자라서 먼저 가려고 했던 심보를 눈치 채기나 한 듯이 그 많은 차들을 다 티켓을 줄 때까지 한참을 길옆에 세워두는 것이었다.
도대체 PAL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더니 Peripheral Available List란다. 이 표시를 자동차 운전면허 필기시험에서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일반 차량이 통과할 수 있는 카풀 레인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좀 더 빨리 가려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선 것이다. 티켓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첫째는 내가 무지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냉철하게 바른 길을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리더십 세미나나 책을 통해 익히 듣고 읽고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이토록 뼈저린 경험을 통해 얻은 체험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책에서도 강조하듯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리키고 있는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고 벽에 걸린 시계에 얽매이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지금 내 삶 가운데 혹시 빨리 가기 위해 바른 방향을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 지 영 (LA지구촌교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