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멋진 여름 만들기

2004-07-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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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은 자녀들을 인해 걱정하는 분들을 대하면서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생각이 났다. 나 역시 다른 부모들처럼 방학만 되면 생각이 많았었다. SAT학원에 보낼까? 피아노를 좀 더 배우게 할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게 할까? 아니면 운동을?... 한 달여 전부터 고민하며 기도하곤 했다. 그중 지금 생각해도 참 잘했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자전거 여행’을 보낸 것이다. 형제 없이 혼자 자랐기에 모르는 사람들과 단체생활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고, 한번쯤 몸으로 부딪히고 애쓰는 모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애틀까지 가서, 그곳에서부터 야영하며 주 경계를 넘어 내려오는 위험하고 체력소모가 많은 여행이었다. 많이 망설였지만 용기를 낸 후 자신 없어 하는 아이를 이해시켰다. 함께 나가 자전거와 푹신한 안장과 헬멧과 물통, 거리를 재는 시계와 선글라스와 장갑을 샀다. 후회할 일이 생길까봐 노심초사하던 마음이 부끄러울 만큼 2주 후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먼지투성이 자전거를 끌고 돌아온 아들은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있었다. 물론 너무 힘들고 엉덩이가 아파 다시는 자전거를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지만 자신감이 넘쳤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고 대견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한번은 아들과 단 둘이서 2개월 동안 선교지를 다녀왔다. 현지인 집에 머물며 기초언어와 문화를 익힌 후, 선교사님과 함께 고산으로 들어갔다. 10시간을 걸어와 맨땅에서 거적을 덮고 자며 공부하는 신학생들과 일주일을 지낸 후, 타고 가던 말도 걸음을 멈추고 울부짖을 만큼 험한 고산의 마을들을 찾아다녔다. 그들과 똑같이 또르띠야 한쪽에 빗물 같은 커피한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물이 없어 보름동안 샤워는커녕 세수도 양치도 못했다.
밤만 되면 비바람이 그대로 들이치는 판자 집에서 추위에 떨며 날밤을 새곤 했는데 벼룩은 왜 그리 많은지. 가는 곳마다 화장실이 없어 당한 고초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날이 처참해져 가는 몰골에 ‘내 욕심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잡는구나’ 후회도 했지만 오히려 아들은 달랐다. 늘 부족하다고 여기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다. 후로는 가끔씩 부리던 어리광이 없어졌다. 투정은커녕 음식을 남기는 법도 없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아빠, 늘 약해 보이던 엄마가 그 힘든 과정을 함께 겪은 후로는 부모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엄청 달라졌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도, 세상을 보는 눈도 변했다. 지금도 가끔씩 지난 일을 추억하며 감사를 잊지 않는 아들을 볼 때마다 더불어 감사한다.
부모님들이 생업에 바쁘고 힘든 것을 잘 알지만 조금만 멀리 보고, 조금만 더 마음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자녀가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정체성을 정립하고 삶의 목적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오래도록 큰 감동으로 남을 멋진 여름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김 선 화 (샌 페드로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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