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그릇의 크기는 민족사랑에서

2004-07-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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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인물 중에서 모세와 바울은 오랫동안 나에게 도전이 되었다. 모세는 참으로 신비한 인물이다. 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서 주류사회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유대인 타운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 최고의 강대국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에 유대인 타운 정착을 위하여 일생을 헌신한 것이다.
바울도 끔찍하게 민족을 사랑한 인물이다. 그의 열정은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민족주의적 기질이 다분한 선교사로서 아시아와 유럽을 전전할 때에도 유대인 회당을 찾았다.
“네 민족이 어디 있느냐?” “네가 척박한 겨레를 위하여 언제 빚을 갚겠느냐?” 이러한 질문은 봉사를 미룬 채로 오랜 동안 학문을 하는 나에게 주어진 도전이었다. 1997년 학위를 마치면서 고국행 결단을 어렵지 않게 한 이유는 신학자나 사회과학자에게 위하여 학문을 할 대상이 되는 민족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때문이었다.
2002년 초까지 고국에 있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목포에서 판문점까지, 동해의 통일전망대에서 포항까지 열심히 다니며 가르치고 고국의 사람들과 산천을 즐거워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미국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도미하여 인사차 만난 지도교수 리처드 마우 풀러신학교 총장은 “네가 어떻게 다시 올 수 있었느냐”고, 또 “네 학문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보시며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느낄 수 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곳에도 “한국의 연장선에 있는 민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얼마 전, 새벽기도 중에 내게 감동이 왔다. 너는 한국 민족의 가장 깊은 곳에 있으며, 오히려 이방에서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향한 목회이므로 더욱 깊은 곳에 그물을 치고 있다는 감동이었다. 더욱이 고국의 교육이 흔들리며 심성이 선한 사람들을 길러내기에 힘든 것을 바라보면, 이민을 통하여 길러지는 우리의 후대들이 미국은 물론이고 고국의 장래를 위하여도 귀중한 자원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얼치기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감히 나는 교회가 민족 사랑하는 마음을 근실하게 통과하지 않고 세계를 사랑한다고 나아가는 것을 조금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자기 식구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을 사랑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철저하게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던 모세나 바울이 세계적으로 공헌하는 것, 인류 역사에 길이 남는 스승이 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람의 마음 그릇의 크기는 민족사랑을 통하여 확장된다고 나는 믿는다. 사랑은 과감하게 자신을 고통받는 사람과 집단, 그리고 어려운 민족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능력이다. 세상의 보화를 버리고 자기 백성을 택한 모세의 고뇌와 세계선교의 소명 속에서도 민족 때문에 가슴아파한 바울의 고민을 가진 차세대가 간절히 그리워졌다.

민 종 기 목사 (충현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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