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이 세상을 다 가진다면

2004-07-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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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굴려서 자금을 조금 더 확보한 뒤에 약간 업그레이드 된 수준의 집을 보러 다녔는데 웬걸. 그렇게 좋아 보이던 집들이 다시 불만스러웠고 그보다 약간 더 보태야 살 수 있는 큰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주식 부당 거래로 법정에 섰던 마사 스튜어트가 지난 주, 5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그녀는 형기의 일부를 자기 집에 갇히는 가택연금으로 치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뉴욕주에 있는 집은 땅이 153 에이커, 5,000달러가 넘는 대저택이다. 집에 갇히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그 넓은 집을 다 딛고 다닐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 집은 이사 온 지 10년이 되었다. 남들은 새로 생기는 멋진 동네에 날렵하게 새로 지은 집을 사서 훌쩍 이사도 잘 가련만. 이 집을 소개해주었던 베테런 부동산 에이전트 말이 한국 사람들은 평균 5년에서 7년 사이에 집을 다시 팔더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10년이 되도록 꿈쩍도 안 하는 것을 보고는 ‘에잇! 영양가 없는 손님 같으니라구. 내가 너무 좋은 집을 소개해 주었던 게 영 실수였지’ 하는 농담도 덧붙인다.
처음 이사 올 땐 그리도 넓어 보이던 방들이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비좁아지는 느낌이다. 방이 딱 하나만 더 있었어도... 하고 아쉬워했다가 우리 집보다 두 배가 넓게 큰집에 사는 친구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생각을 접었다.
내가 매일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동네에 아주 큰집이 있는데 엊그제 보니 For Sale 사인이 붙었다. 방이 11개라고 한다. 게스트 하우스의 크기가 우리 집 전체만 하다.
그 다음날, 우연한 자리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 A씨를 만났다. 지금 그분이 사는 집도 나 보기에는 궁궐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좁아서 새 집을 보러 다닌다는 것이었다. 문득 방 11개 짜리 저택이 떠올라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A씨의 대답인즉 ‘저희는 사이즈가 조금 큰집을 찾고 있습니다. 그 집은 너무 작아서...’라는게 아닌가.
10년 전, 우리는 당초 예산보다 초과하여 집을 마련했다. 손에 가진 돈으로 알맞게 구입할 만한 집은 눈에 차지를 않았다.
에이전트가 안내해 주는 대로 집 구경을 다녔는데 그 당시 가진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비싼 집만 눈에 들어왔다. ‘한 번 무리를 해봐?’ 머리를 굴려서 자금을 조금 더 확보한 뒤에 약간 업그레이드 된 수준의 집을 보러 다녔는데 웬걸. 그렇게 좋아 보이던 집들이 다시 불만스러웠고 그보다 약간 더 보태야 살 수 있는 큰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 하는도다 전도서 1:8>
얼마 전 아프리카로 단기 선교를 갔을 때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장소 이동을 하게 되었다. 길이 나쁘고 교통편이 없으니 다른 부족이 사는 마을에 찾아갈 때에는 쌍발식 프로펠러기를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날 영국인 선교사가 조종하는 비행기를 타고서 낮은 비행을 하는데 조종사가 이 나라에서 제일 큰집이라며 손가락으로 창 밖을 가리킨다. ‘미국인 사업가가 살고 있는데 300에이커 정도 된다’는 설명이다.
“애걔걔, 조만한 땅을 가지고?” 그렇게 크다는 집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니 우스웠다. 초원지대 한가운데 울타리를 친 것도 우스웠고 그 울타리에 전기 철조망을 설치해 경비를 세운 것도 우스웠다. 성곽처럼 생긴 본채 건물도 가소로웠고 납작 엎드린 부속 건물들도 한낱 장난감 같았다.
그날 밤 나는 별이 보이는 천막에 피곤에 지친 몸을 눕혔다. 고작 한 평 남짓이었는데 그만하면 충분했다.

김범수<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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