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심플 라이프

2004-07-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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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미국사람들의 심플라이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한국사람들에 비해서 미국사람들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것 같다.
우리 동네 맥도널드에 가면 아침마다 나와서 그림을 그리는 미국인 할아버지가 있다. 몇 번 보았을 뿐이지만 항상 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 너무도 편안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인타운근처의 한 도서관에 가면 수요일마다 오래되고 낡은 책들을 모아 10센트, 20센트에 파는 자원봉사자가 있는데 나이 많은 미국인 할머니이다. 그 분은 자랑스럽게 은퇴하고 나서 11년 동안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그 도서관에 나와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인 노인들의 하루일과나 취미생활은 바쁘기 짝이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운동, 매일 다른 식당에서의 식사, 사우나, 노인회 모임, 각종 취미생활에 단체여행, 한국비디오 보기 등등, 한인타운 어디서나 활발한 한인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힘없이 양로원에 머무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보다는 보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즐겁고 보람된 나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현대의 노인’들의 모습과 내가 만난 미국인 노인들의 ‘심플 라이프’를 비교해 보면서, 나는 가끔 이제 겨우 40의 문턱에 다다르는 주제에 걸맞지 않게 나의 노년기에 대해 상상해 보곤 한다.
나는 나이를 먹어 늙게되면 도시를 떠나고 싶다.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외로운 복잡한 시가지를 떠나 평화롭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적한 마을에서 독서와 음악을 즐기고, 힘이 되는 대로 남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며 인생을 정리하고 싶다. 노인 분들의 혀를 차시며 아직 아파 보지 않고 외로워보지 않아서 편한 소리한다는 말씀이 귀에 들려오지만, 현재의 나의 은퇴계획은 럭서리보다 심플 쪽에 기울고 있다.
얼마 전 반스앤노블 서점에서 책 하나를 샀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추천한 심플러 라이프라는 세미나를 바탕으로 한 조그마한 책이었다. 이 책에서 데보라 데포드라는 저자는 “조금 덜 사는 것이 더 잘 사는 것이다”라는 역설을 펴고 있다.
생각해 볼수록 진리인 것 같다.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덜 벌고, 조금 덜 놀고, 조금 덜 피곤한 심플한 인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사람이 많고 하는 일이 많아서 항상 보이스메일이 꽉꽉 메이는 그런 삶보다도, 문득 생기는 조그마한 일과 스쳐가는 한 사람을 돌아볼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심플한 삶이 살고 싶어진다. 우리의 삶이 좀 더 심플해지면, 우리의 마음도 좀 더 깨끗해지지 않을까.

이 용 욱 목사 (하나크리스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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