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를 순화시킨 사랑의 기억

2004-06-25 (금)
크게 작게
대개 한 사람의 내면은 긴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다. 조상의 전통이 한 사람 속에 살아 숨쉬고 있고, 과거의 경험과 추억의 지층이 그 사람의 자아상과 내면적 성격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매력적인 성격과 긍정적인 자아상은 종종 선천적인 것도 있겠지만, 타인의 사랑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완숙한 인격과는 좀 거리가 먼 나이지만, 그나마 이 정도의 심리적 안정감을 누리는 것은 나를 순화시킨 가족 구성원의 사랑이 그 요인인 것 같다.
누구든지 추억이 서린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이 있듯이 내게도 할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막내인 동생에게 빼앗긴 어머니의 사랑 대신에 내가 찾은 것은 할머니의 품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응석을 받아주시지 않으셨지만, 할머니는 정반대였다.
어머님의 꾸중이 있을 때면, 할머니의 치마폭은 ‘나의 산성과 견고한 망대’였다. 어머니의 매 앞에서도 할머니는 “날 죽여라” 말씀하시면서 나를 온 몸으로 보호하셨다. 할머니께 나는 여지없이 존귀한 ‘도련님’이었고, 할머니와 함께 드러누운 자리에서 골백번 반복되는 같은 옛날이야기는 나를 향한 최상의 자장가였다.
어느 해 고등학교 운동회가 한창일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구경하러 놀러간 적이 있다. 경품을 걸고 게임을 하는 아저씨가 지나가는 여학생을 보고 “예쁜 사람은 무료로 뽑아도 돼요”하며 선전하였다. 나는 당장에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나 그냥 게임하도록 해 주세요”라고 말하였다.
내가 예쁘니까 나는 당연히 무료로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터였다. 놀란 그 아저씨는 잠시 후 목을 뒤로 젖히고 크게 웃었지만 나는 그것이 왜 웃음거리가 되는지 알지 못하였다. 군대생활 중, 주말마다 놀기에 바쁜 내게 부모님이 연락도 없이 면회를 오셨다. 부모님은 전방의 내가 고생스러우리라 생각하여 오셨지만, 나는 부하 사병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어 매우 부끄럽고 당황이 되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동료가 “네 부모님이 아직도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부러워하였다. 군에서 제대할 때, 아버지는 또 연락 없이 오셨다. 제대하는 많은 동기 장교 중에 아버지께서 오신 경우는 나밖에 없어 또 다시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이같은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나의 건전한 자아상을 유지시키는 힘이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 부모님이 이제는 노인인데, 아직도 자신보다 훨씬 더 튼튼한 아들의 건강 걱정을 하고 계시다. 이것은 분명 사랑의 역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부모와 친척과 아내와 남편과 자식을 통하여 성도에게 이슬처럼 내린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거친 심령을 순화시키고 있다.

민종기 목사 (충현선교교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