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목사님, 아 - 하세요”

2004-06-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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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줄 수 있는 명예도 재물도, 한낱 스러지고 말 이슬로 여기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는 목회자들을 나는 존경한다.

섬기던 교회를 떠나 1년 가까이 방황한 적이 있었다. 주일이면 여기 저기 처음 가보는 교회를 기웃거렸다.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 테이프를 정기적으로 주문해서 듣고 있던 터라 목소리만 귀에 익은 설교자의 교회를 찾아 한 두시간 씩 운전을 하기도 했다.
마음이 텅 빈 듯 허전한 세월이었다. 그 1년은 나에게 길고 어려웠다. 주일이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다. 아아, 이번 주엔 또 어디로 가나? 언제까지 헤매어야 하나? 하나님께 예배드릴, 정해진 제단이 있다는 게 그처럼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이전엔 몰랐었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엄마, 아빠, 오늘도 또 새 교회 가야해요?”
이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한 교회로부터 떠나오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다른 곳으로 인도하실 이도 하나님이실 것이었다. 하나님, 이 교회입니까? 하나님, 여기가 그곳입니까? 우리 가족은 방문한 교회에서 주일마다 ‘새로 오신 분’이 되어 예배 시간에 일어나 인사를 했고 예배 후에는 새 가족부에 안내되어 점심도 나누고 ‘환영 새가족’ 팻말 아래서 수없이 사진도 찍혔다.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아내와 나는 똑같은 대화를 반복했다. “어땠어요? 설교 말씀이?” 사회생리학적으로 적응력이 남자보다 뛰어난 아내가 ‘혹시 여긴가?’ 싶어 내 의사를 묻지만 나의 생각은 다른데 가있다. “음음, 글쎄... 그런데 그 목사님 아래 앞니 두 개 있잖아. 그거 아무래도 새로 해넣으셔야겠던걸.” 아내는 혹시나 하던 마음을 접고 ‘못 말리는 이빨쟁이!’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을 것이다.
나는 그 동안 LA 인근에 가보고 싶었던 많은 교회를 다 다녀보았다. 이름 난 미국 교회도 모두 섭렵하였다, 그리고 느낀 것은 많은 목사님들의 치아 건강이 형편없다는 사실이었다.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은 비용 때문에 치과 가기를 미루었을 것이다. 아니면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 열심 때문에 자신의 문제는 날마다 뒷전이었을 것이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명예도 재물도, 한낱 스러지고 말 이슬로 여기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는 목회자들을 나는 존경한다.
안식년을 맞아 돌아오신 목사님이나 평신도 해외 선교사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안녕하십니까?” “네에, 남아프리카에서 오셨다구요? 네팔이요? 몽골, 러시아, 터키, 이디오피아, 이스라엘, 파푸아뉴기니.....라구요?” 고개 숙여 인사하는 동시에 나의 두 눈은 이미 그분들의 치아를 진단하고 있다. 직업 탓이다. A목사님은 앞니 교정. B선교사님은 신경 치료, C목사님은 보철 새로 하셔야겠음, D선교사님, 잇몸 치료...
이분들을 치료해드리는 것은 나의 기쁜 의무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치과의사라는 달란트를 주신 것은 바로 이런데 사용하라고 주셨음을 믿기 때문이다. 치료가 끝난 뒤, 한 선교사께 간곡히 권했다. “하루 세 번은 꼭 이를 닦으십시오. 덴탈 플로스도 사용하셔야 겠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내게 말했다. “제가 있는 곳에는 물이 없습니다. 한달에 한두번 비가 오면 그 물을 받았다가 식수로 씁니다.”
이를 닦는 것도 사치이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분들의 치료비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학개2:8)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이미 다 갚아주셨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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