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패사디나 초크스트릿 페인팅 페스티벌

2004-06-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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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사디나 초크스트릿 페인팅 페스티벌

초크 스트릿 페인팅 페스티벌에 참가한 예술가들이 보도위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번 주말 패사디나등 남가주 곳곳에서는 이런 축제들이 열린다.

거리누빈 예술의 열정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살이 자체가 자고 나면 물에 씻겨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림인지도 모른다. 사라질 거라고 아무 것도 그리지 않겠다는 자세는 얼마나 안이한가.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사라졌다고 이 우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사는 것은, 그리고 길거리의 예술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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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오른 그림들을 살펴 보는 축제 참가자.


매해 6월 패사디나에서 초크 스트릿 페인팅 페스티벌(Absolut Chalk Street Painting Festival)이 열린지도 12년이 넘어간다. 차들과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 찬란한 6월의 태양 아래 거대한 캔버스로 바뀌어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로 채워지는 모습은 마법과도 같다. 패사디나 뿐 아니다. 이제 6월이면 테메큘라, 샌타 바바라, 오하이 등 남가주 곳곳에서 초크 스트릿 페인팅 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길거리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의 역사는 16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기야 사용된 재질이 조금 달랐지 실제 착색 모래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던 역사적 증거는 서기 600년께 일본의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길거리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은 만도나리(Mandonnari)라 불렸다. 만도나리는 일련의 예술가들이 만도나라는 지방에 초크로 벽화를 그린 역사적 작업에 참여한 이후 붙여진 별명이었다. 당시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거리 위에 그리는 그림은 대중 예술의 중요한 형태였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채색 모래, 톱밥, 꽃잎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길거리에 그림을 그리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었다. 채색 모래로 그린 그림의 변형은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된다.
명상의 한 형태로 모래 그림이 이용됐다. 힌두 여인들과 어린이들이 만드는 의식용 모래 그림은 락쉬미 여신으로부터 은총을 받기 위한 적극적인 몸짓이었다. 미국 남서부의 나바호 인디언들에게는 땅바닥에 그리는 드라이 페인팅(Dry Painting)의 전통이 남아있다. 드라이 페인팅 전통은 질병을 낫게 해달라고 자연에 기원을 드리는 의식의 한 부분이었다.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도 모래 그림은 인기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1700년대와 1800대에 모래 그림과 길거리 그림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투박한 소재를 가지고 때묻지 않은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만도나리들은 진정한 의미의 포크
아티스트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런 거리 예술가들의 숫자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만다.
지난 20년 동안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거리의 예술을 되살리자는 운동은 지구별 곳곳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들이 잃어버린 표현의 장에 대한 열정을 안고 유럽의 거리에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새로운 아이디어, 신선한 소재는 보다 세련된 채색 도구인 초크로 예전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 아티스트들은 금가루, 은색 페인트, 채색 모래, 색 유리 등 다양한 소재로 그림 그리기를 시도했다. 그들은 램브란트와 미켈란젤로, 라파엘의 그림들을 이탈리아의 광장과 길거리에 재현해 냈다. 역사적으로 만도나리들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작품 활동을 했다.
집시와 마찬가지로 이런 부류의 삶도 세습적이기 마련이다. 그들은 유럽 전역에 언제 축제와 명절이 다가오는지를 달력 들여다보듯 훤하게 알고 있었다. 꽃의 축제라도 열릴라치면 만도나리들은 시간에 맞춰 피렌체에 도착한다.
마을에 도착하자 마자 만도나리들은 곧바로 마을 중앙의 시뇨리나 광장에 나가 초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화려한 색채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내려다 보았다. 마음씨 좋은 아낙네는 그들을 위해 끼안띠와 파니니를 내왔을 터이다.
메디치 가의 귀공자들은 아마도 후하게 금화 몇닢을 던져주지 않았을까. 마을 경찰인 까발리에리가 그들을 끌어내기 전까지 만도나리들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적선에 고마움을 표하며 그림으로 축제를 장식해주었다. 축제가 끝나거나 첫 비가 내린 뒤면 그들의 그림은 흔적도 없이 씻겨져 내려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등 프레스코화가 몇 세기를 뛰어넘어 아직까지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만도나리들이 그린 그림들은 도대체 어떤 것들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풍부한 감성의 시인과 작가들의 예술혼을 자극했다.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인 로도시코 아리스토며 가르실라소 데라 베가는 그들의 작품에서 마을에 찾아온 하찮은 거리의 예술가들을 노래했을 터이다.
요즘에는 발전된 테크놀로지 덕에 사정이 좋아졌다. TV 카메라와 영사기로 찍은 다큐멘터리와 사진들은 거리의 예술을 짧은 시간의 해프닝이 아닌 반영구적 기록으로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최근 길거리 그림 축제는 미 전역에서 인기를 더해가며 새로운 예술 애호가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주말 패사디나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트릿 페인팅 페스티벌이 열리게 된다. 찬란한 태양빛 아래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그림들을 눈에 들여놓는 시간으로 인해 삶은 꽃처럼 화사한 색으로 장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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