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을 배워야 할까?

2004-06-18 (금)
크게 작게
인생의 가장 뿌듯한 순간 중에 졸업식이 있다. 어려운 공부를 나 자신과 힘들게 싸우면서 이룩한 지식의 경지. 불과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지만 졸업장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과히 삶의 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가 문제다. 사회에 나와서 보니 그 몇 년 동안 코피를 터뜨리며 공부한 모든 것들이 일터에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실제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바로 이것이 ‘지식’ 위주 오늘날 교육제도의 문제가 아닐까?
요즈음은 누구나 다 가는 유치원을 빼더라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보통 16년 이상의 교육을 받는다. 시간으로 따지면 엄청난 시간이고 인생의 시기적으로 볼 때 기초를 다지는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이 중요하고 많은 시간동안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지식뿐이다.
특히 근래에는 영어/수학 위주의 학습이 되었다. 예능이 없어지고 자연과학에 치중하면서 학생들의 정서가 불안하게 되었다. 역사와 사회과목보다는 경제나 정보계통 과목이 인기를 끌면서 학도들의 정신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옛날 조선시대의 서당이나 청교도들의 학교에서처럼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인격과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뼈저리게 아쉽다. 최소한 1970년도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도덕시간에 ‘바른생활’이라는 책으로 열심히 공부한 기억이 생생한데, 요즈음 학교에서는 종교는 물론 올바른 생활을 위한 훈련조차도 제대로 하기 힘든 ‘발묶인 교육’이 되어 버렸다. 결국 자라나는 어린이, 배움의 시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인생의 성공을 위한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가정과 교회의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심각하다. 부모가 맞벌이하고, 컴퓨터게임과 인터넷이 어린이 오락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늘어나는 숙제에 과외/학원수업까지 다 하려면 학생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줄만한 환경을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학교모델을 따라 학부과정을 만들어 성경구절을 암송시키고 시험을 보고 졸업장을 주는, 신앙교육의 공동체라기보다는 성경지식의 학원체제가 되어버렸다. 학교는 둘째 치고라도, 가정과 교회에서의 교육만큼은 변해야 한다. 시간이 들고 어렵더라도 정서적이고 인격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가정과 교회로 탈바꿈을 시도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무엇보다도 가족들간의 대화시간을 통해 부모들의 경험담, 자녀들의 취미생활이 나누어지는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고, 교회에서는 숫자적이고 목표달성을 위주로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편안하게 크리스천들이 모여 앉아 평상시의 삶을 나누고 철학과 신앙을 논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공동체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지식에 앞서 지혜가 쌓아지는 교육의 장이 열릴 때,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교회, 사회가 좀 더 의미 있고 아름다운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모든 배움은 유익한 것이라 했던가.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21세기, 무엇을 배우는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용 욱 목사
(하나크리스천 센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