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그들의 이름은

2004-06-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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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장로님 한 분은 본래 이름, ‘이 상규’의 영어이름을 ‘Thank You Lee’ 라고 지었다. 그분의 얼굴에 늘 감사함이 넘치는 것도 이 아름다운 이름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 제현이는 내 친구다. 나는 ‘현’ 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내심 부러워했는데 ‘현’으로 시작하는 낱말을 생각하면 현명, 현인군자, 현숙, 현당, 현능... 좋은 얘기만 떠올리게 되고, 특히 백씨 성의 이미지는 어렸을 때 읽은 탐정 소설의 주인공을 연상시켜서 더욱 스마트한 이름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었다. 그런데 정작 백 제현이는 두 팔을 휘젓는다. “역사 시간에 선생님이 고구려와 백제의 흥망성쇠... 하면 내 이름을 부르는 줄 알고 졸다가 벌떡 일어난 거 생각 안 나냐?”
하긴 LA의 크리스천 사진작가 장 사한씨도 이름 때문에 몇 번이나 깜짝 놀랐다고 유머 섞인 한마디를 한다. “주일예배 때 사도신경을 외우면 말입니다. 장사한 지 사흘만에...할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지 뭡니까?”
아프리카 선교사로 나가신 박 성규 목사님의 부인, 박 은경 사모는 최근 이상한 전화를 몇 번 받게 되었다. 사연인즉 새로 발간된 케냐의 전화번호부 책에 본인의 이름, Eunkyung Park이 국립공원 섹션에 실렸더라는 것. 그 유명한 나이로비 국립공원 안내 전화번호 바로 아래 버젓이 인쇄된 ‘은경 파크’를 보고는 기절할 뻔하였는데 더욱 기막힌 것은 실제로 전화를 걸어오는 관광객이 적지 않아서 ‘거기가 사파리 공원이냐, 입장료는 얼마냐’ 하는 문의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주소만 보고 찾아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나는 늦게 얻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다. 주변에 이삭이라는 아들을 둔 부모를 종종 만나는데 많은 경우 오래오래 기도해서 얻은 아들이라는 간증을 가지고 있다.
아비 된 나의 믿음이 아브라함 같지 못한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거꾸로 아들을 통해서 나의 믿음도 성숙하기를 바라게 된다. 내게 오는 어린 환자들의 이름이 한국식으로 ‘하은’ 이나 ‘주은’ 이로 되어 있으면 그들은 목회자의 자녀이기가 쉽다. 상급으로 주신 자녀를 하나님의 은혜, 혹은 주님의 은혜로 받았음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믿음의 이름을 지어주었으면서도 부모가 그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그레이스(은혜)나 레이철(라헬), 새라, 루스, 드보라, 로이스, 유니스...남자 이름으로는 쟈슈아(여호수아), 존(요한), 죠셉(요셉), 티모디(디모데), 마크(마가)...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아이들에게 “네 이름이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의 이름인 것을 알고 있니?” 하고 물은 뒤에 아는 데까지 열심히 설명을 해주는데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 사실을 기쁘게 여긴다.
또 내가 아는 장로님 한 분은 본래 이름, ‘이 상규’의 영어이름을 ‘Thank You Lee’ 라고 지었다. 그분의 얼굴에 늘 감사함이 넘치는 것도 이 아름다운 이름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메일 박스에는 세계 곳곳 선교사님들의 선교보고 편지나 중보기도 요청 편지가 가득하다. 기독교가 금지된 나라에서 오는 편지에는 이름이 가명으로 감추어져 있는데 김 평화, 박 승리, 이 영광, 정 진흙 등등 성경 속 단어를 이름으로 삼은 경우이다.
이들은 편지 속에서 예수님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못한다. 읽는 사람이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날마다 얼굴도 모르는 이 분들이 이름을 놓고 기도한다. 선교사란 나를 대신해서 몸소 땅 끝까지 나가신 분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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