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체리 과수원 나들이

2004-06-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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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따기

추억 묻어나는 향기로운 여유

과수원 가는 길은 즐겁다. 어린 시절을 포천에서 보낸 미미 김(40, 재정상담가)씨는 창밖을 바라다보며 추억에 젖어든다. 낮은 목소리로 ‘동구 밖 과수원 길’을 부르니 어느덧 제섭(9)이와 스테파니(8) 두 남매도 엄마의 멜로디에 화음을 맞춰온다.
레이크 휴즈 인근의 과수원 에덴 농장으로 체리를 따러 가는 길, 그녀의 가슴은 할머니 댁 가던 3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 없이 기대감으로 솜 방망이질 친다.
오랜만에 대자연의 품에 안긴 것이 좋은 지 남편 김경묵(40, 와인 샵 운영)씨도 연신 싱글 벙글이다. 이제 6월이 되면 우리들에게는 할 일이 있다. 체리 과수원 가는 일은 아마도 많은 한인들에게 있어 초여름 연례행사일 게다.
우리들은 다리품을 팔더라도,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마켓 진열대가 아닌 나무에 매달린 체리를 따먹는 걸 좋아한다. 아마도 동구 밖 과수원에서 자두와 복숭아를 따먹었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미국 와 살면서도 우리들의 이 “따먹는” 습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를 않았다. 자연은 정직하면서도 신비롭다. 봄에 눈 내리듯 피었던 하얀 꽃이 지고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물, 그리고 대지의 영양을 흡수한 나무는 이토록 아름다운 체리 열매를 가지가 휘어지도록 맺어준다.
올해는 체리 수확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소식도 들려왔었다. 하지만 LA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레이크 휴즈의 에덴 농원의 체리 나무들은 검은 색이 감돌 정도로 탐스러운 체리를 가지마다 품고 있었다.
“와, 체리다.” 스테파니가 반가운 마음에 나무들이 일렬로 심겨져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아니, 그런데 그녀의 낮은 키에서 딸 수 있는 열매는 이미 다른 어린이들이 따고 난 후. 햇빛 아래 은색으로 빛나는 사다리를 가져다 놓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제대로 자리를 잡은 스테파니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똑똑 열매를 따기 시작한다.
태양빛을 머금은 열매는 뜨겁기까지 하지만 물에 씻기도 전 입에 가져갈 수밖에 없을 만큼 유혹적이다. 체리를 따다가 한 입을 베어 물은 스테파니의 입 주변이 붉게 물든 것을 보고 미미 김 씨는 닦아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깔깔 웃어댔다.


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체리가 25종류나 된다고 하는데 빙, 유타 자이언트와 하티 자이언트, 램버르트, 로얄 앤, 타타리언 등이 비교적 짙은 색깔에 달고 씹히는 맛이 있는 종자들이다. 체리 나무는 약 9세 때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15-30년생의 열매가 가장 맛있으며 나무가 살아만 있다면 100년이 넘도록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꽃 피고 난 후 75일이면 열매가 맺히고 그로부터 2주간이 체리 따는 시즌.
살충제를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그냥 먼지만 닦고 먹으면 되는데 새콤달콤한 체리를 나무에서 금방 따먹는 맛이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체리 과수원 주인들은 한인 가운데 매년 모습을 보이는 단골손님도 있고 교회 단체 손님들도 많다고 알려왔다.
베테런들은 알이 굵고 단 체리를 따오지만 초보자는 뭐가 뭔지 잘 몰라 그저 가까운 곳에서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것을 따온다고.
고객들은 오전 10시에서 정오쯤 과수원에 도착해, 체리를 따고 싸 온 도시락으로 피크닉을 가진 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즐기다가 3시쯤 돌아가는 것이 정해진 스케줄이라고 한다.
에덴 농원에는 누가 만들어놓았는지 평상도 커다란 게 하나 펼쳐 있어 꼭 원두막에 자리를 잡고 앉은 것 같았다.
교회의 단체 손님들이 한 무리 나가고 나니 그 넓은 농장에 덩그러니 김경묵씨 가족뿐이다. 싸가져 온 와인도 한 잔 하고 새소리를 들으며 경험한 것은 오랜만에 만져보는 향기로운 여유.
주인이 애정을 갖고 가꾸어놓은 농장에는 닭은 물론이고 금계, 공작, 칠면조, 거위 등 조류가 가득해 제섭이와 스테파니는 디스커버리 채널 100번 본 것보다 더한 진짜 자연학습을 할 수 있었다.
나무들의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내년 봄 다시 꽃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깨달음들을 얻어갈까.

과수원에서 지켜야 할 것들

첫째, 아기 기저귀나 휴지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말 것. 둘째, 체리 무게를 재러 줄을 설 때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 셋째, 체리를 딸 때 나무 가지 째로 꺾으면 새순이 함께 없어져 내년에 좋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으니 주의를 기울일 것. 어린 나무가 많아 어린이들도 올라가지 않고 쉽게 열매를 딸 수 있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에 올라가지 말기를.


각 지역의 체리 과수원들

한인들 사이에 체리 따기가 인기 있는 것을 알고 일부 과수원은 안 받던 입장료를 높게 책정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저렴한 입장료를 받는 곳 가운데 에덴 농장 같은 곳은 이미 지난 주 너무 많은 이들이 다녀가 끝물이 됐다.
▲마일 하이 랜치 (Mile High Ranch)
이 지역 일대의 여러 과수원 가운데 최대 규모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다. 25에이커의 대지에 심겨진 900여 그루의 체리 나무가 20톤이 넘는 체리를 생산해내는 대규모 체리 과수원이다. 고객 가운데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다. 시즌에는 주차장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작년 이곳을 찾은 차만도 4,000대가 넘었다고. 마일 하이 랜치의 체리 따기는 6월 12일부터 7월 3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입장료는 일인당 5달러며 딴 체리는 5파운드에 15달러.
12929 Mile High Rd. Oak Glen 10번 샌버나디노 프리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Cherry Valley Bl.에서 내려 좌회전, 4-5마일 앞 Beaumont Ave에서 또다시 좌회전한다. Orchard St.에서 우회전, 다리 여기에서 좌회전해 아무 것도 없는 길을 4마일 정도 끝까지 가면 문을 지나 두 갈래 길이 나오고 왼쪽 비포장도로로 가면 마일 하이 과수원이 나타난다. 문의 전화 (909) 797-5145, 스캇 라일리.
▲굴드세스 과수원
(Guldseth Orchard)
이미 지난주에 시즌을 시작해 앞으로 2-3주 더 갈 것으로 기대하지만 날씨가 지나치게 덥거나 따러 오는 사람들이 많을 경우 이 기간은 더 짧아진다. 과수원은 약 3에이커. 9150 Whispering Pines Rd. (909) 845-2490
▲필렌 농장 (Phlan Ranch)
약 400그루나 되는 10년생 체리 나무들이 탐스러운 열매를 맺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지난 주말부터 개장했다. 입장료 3달러를 내면 과수원에서 먹는 것은 무료. 1파운드 당 2달러로 다른 농장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주소, 3585 Vegonia Philan 가는 길은 10번 E.→15번 N.→138 W.→Phlan에서 내려 Sheep Creek 길로 6마일을 가다가 18번 Palm Dale Rd.를 만나 좌회전하면 된다. 전화, (760) 868-1767.
▲메사 랜치 (Mesa Ranch)
이미 오픈 했다. 주 7일 오전 8시-해질 때까지. (661) 270-1973.
▲에덴 농장
입장료 1달러. 커다란 커피 캔 가득 따면 10달러. 26865 Pine Cayen Rd. Lake Huge, CA (661) 724-8311. 떠나기 전에 체리가 많이 남아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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