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의 울타리를 쳐주면서

2004-06-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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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들과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 월요일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홉 살 난 큰딸과 함께 갈 장소와 시간을 약속했다. 작은아들과도 수첩을 꺼내 들고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아이들은 너무 신이 나서 아침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그러면서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조심스레 가고픈 곳과 먹고픈 것을 이야기했다.
나의 수첩에는 언제나 교인들의 이름이 날짜마다 빼곡히 차 있는 것을 누구보다 아이들이 잘 안다. 언제나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면, 반드시 수첩을 꺼내 들고는 고민하는 모습을 아이들은 익히 잘 아는 터다. 그런데, 교인들과의 약속만 적어 넣는 것인 줄 알았던 그 수첩에, 감히 자기들의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리고는 아이들은 황공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빠로서 단 둘만의 시간을 약속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을 이렇게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것인지 미처 몰랐다.
작은아이와는 피자를 먹은 후, 공원 놀이터에 가서 함께 연을 날리고, 공을 차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아이는 내가 어려서 무슨 놀이를 하면서 자랐는지 궁금해했다. 딱지치기, 구슬놀이, 망까기, 알영구리, 땅따먹기, 찜뽕놀이, 말타기… 이름만 떠 올려도 아련한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한 이름들이 함께 놀던 아이들의 얼굴과 함께 떠올랐다. 그 중에 땅따먹기를 함께 해보자고 했다. 납작한 돌멩이를 구해서는 놀이터 구석에서 서로 돌아가며 돌을 튕겼다. 아이는 너무나 재미있어 했다. 아이는 아빠가 이렇게 재밌는 놀이를 알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한국의 골목길과 미국의 공원 놀이터는 너무나 다른 데가 많지만, 그 흙을 만지는 동심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딸아이와는 근사한 부페식사를 했다. 아들에게는 말을 붙이느라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었는데, 딸아이와는 한결 쉬웠다. 아빠에 대해 그렇게도 궁금한 것이 많았었는지 이것저것 질문과 화제가 꼬리를 문다.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 달라고 나도 물었다.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참 많았다. 아무렴 그 남편이 누군데…하면서, 물론이라는 듯이 끄덕이며 듣던 중, 한가지가 마음에 남아, 두고두고 생각케 했다.
엄마가 아빠와 절대로 이혼하지 않겠다고 얘기해 주어서, 자기는 엄마가 좋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 스물 한명 중에, 자기를 포함하여 다섯명만 이혼하지 않은 가정이라고 한다. 자기는 부모가 이혼할 염려가 없으니, 행복한 아이라고 설명해 준다.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가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흔들리고 있다. 친구들의 경험을 통해, 부모의 이혼은 상황발생 가능성 1급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 아빠에게는 이혼이란 두 글자가 존재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자.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삶에 안정의 울타리를 쳐주어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팔짱을 끼고 아빠에게 기댄 딸아이의 어깨는 너무나 여리게만 느껴졌다.

김 동 현 목사 (언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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