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월요일 오전의 산책

2004-05-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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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건강을 걱정하는 성도님이 종종 채근하다시피 묻는 것은 “운동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등산이나 달리기를 한다고 성도님께 회피성 대답을 한다.
아침에 할 수 있는 30분 달리기야 새벽기도 후에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산책은 월요일이 아니면 힘들다. 월요일 오전은 내가 좋아하는 산자락을 감사함으로 밟을 수 있는 때이다. 아이들을 학교로 실어 보낸 후, 물을 한통 들고 이내 아내와 함께 집 근처의 산길을 더듬어 간다. 동쪽 멀리는 높은 마운트 윌슨의 봉우리가 겹치어 보이고, 좌측에는 라크레센타의 지붕을 이루는 연봉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그 아침에 산은 아직 햇살에 벗어지지 아니한 어둠을 잠옷처럼 입고 있다.
그런데 산은 무엇보다도 내 가정사역의 한 부분이다. 아내와 나, 둘만의 시간이 거의 없는 생활 속에서 산을 걸으면서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 그동안 쌓인 푸념을 나누고, 때로는 논쟁이나 의견조절이나 계획을 한다. 감사와 격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기에 산은 아직도 내게 더욱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산은 나의 정서생활을 한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어려서 자란 집은 산 아래에 있었다.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형편없이 낮은 산이 되어버렸지만, 그 비봉산은 토끼사냥, 칡뿌리 캐기, 쥐불놀이, 그리고 전쟁놀이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계곡을 오르다보면 가재잡이에 정신이 없던 어린이시절, 하염없이 이어지던 군대시절의 산악행군을 추억하게 된다. 게다가 나의 마음을 지질학자나 창조과학자로 만드는 지층과 암석이 나를 감동시킨다.
무엇보다도 산은 내게 영적인 도전을 던진다. 산과 물과 암석들을 바라보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와 감동을 허락한다. 모세에게 호렙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이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산은 그분의 가장 깊은 말씀, 산상보훈을 전달받는 진귀한 공간이었다.
이세벨에게 쫓겨 떠난 엘리야에게 호렙산은 회복의 공간이었다. 산봉우리와 연봉들은 신앙의 위인들의 보여준 성숙의 자태처럼 보이고, 바위와 나무의 어우러짐은 은혜 속에서 어려움을 헤치고 나아가는 성도의 성취로 보여진다.
산은 사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름다운 산은 하나님께서 주신 회복의 공간이다. 평야가 일하는
공간이요, 사막이 수련과 연단의 공간이라면 산은 휴식과 쇄신의 공간이다. 그 산이 우리 삶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하나님의 축복인지 모른다. 좋은 공기와 나무, 그리고 짐승들과 시냇물, 이름 모를 들꽃들의 향기와 색깔은 콘크리트와 철근의 회색 숲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무엇보다도 월요일 아침, 아내와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걷는 공간은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지친 몸과 마음과 영혼을 가다듬는 새로운 축복으로 다가온다.

민 종 기 목사 (충현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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