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2004-05-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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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불안

청조 말기 서구 열강이 중국을 유린할 때, 우리나라 서해 건너편의 청도(칭다오)는 독일 차지였습니다. 오늘날 청도맥주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맥주의 원조인 독일인들이 청도인들에게 맥주 제조의 비법을 전수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중국 최고의 브랜드인 청도맥주는 독일 침략의 서글픈 유산인 셈입니다.
청도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독일총독 관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공산당 고위간부들을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일반인의 유료입장이 가능한 유적지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총독관저 1층은 몇 개의 방들과 큰 거실, 접견실, 회의실, 식당, 주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실 중앙의 웅장한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엔 총독의 침실, 서재, 아이들의 방 등이 있습니다. 몇몇 방문에는 그 방에서 잠을 자고 간 고위간부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모택동이 한 달 동안이나 휴양을 취했던 방은 총독의 침실이 아니라 놀랍게도 1층 문간방이었습니다.
암살자가 침입한다면 2층 총독침실을 노릴 것이 뻔하기에 모택동은 스스로 문간방을 선택한 것입니다. 게다가 비상시에 도망가기엔 뛰어내려야하는 2층보다 1층 문간방이 훨씬 용이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때 모택동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임표가 기거한 방은 2층 구석의 골방이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가 그 속에서 자리라곤 상상치도 못할 정도의 골방입니다.
총독관저를 다 둘러보고 나올 때, 그 거대한 저택 속에서 유독 문간방과 골방을 잠자리로 삼아야만 했던 모택동과 임표가 한없이 측은하게 여겨졌습니다. 자기 야욕을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을 해치다가 밤이 되면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자신을 숨긴 채 선잠을 자야 한다면 그보다 더 측은한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참된 행복은 직책의 높음이나 집의 크기가 아니라, 잠자리의 평안함에 있습니다.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잠3:24).


<2004년 4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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