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그녀를 만난 날

2004-05-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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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동안 교회 다니는 사람을 멀리 했습니다. 모두가 위선자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난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았습니다. 저도 그분을 믿고 그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LA를 떠난 지 26시간만에 드디어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지금이 낮인가, 밤인가? 좁은 공간에 갇혀있던 나의 몸이 ‘조금 쉽시다’ 하고 호소하는 듯 했지만 나는 짐도 풀지 않고 현지 선교사를 위한 세미나 장소로 직행했다. 임동선 목사님이 인도하실 집회에는 2백 여명의 선교사와 가족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작은 방 하나를 배정 받자마자 간이 테이블 위에 치과 기재를 펼치고 환자 볼 준비를 시작했다. 현지에서 사역하는 동안 치과 치료를 제대로 받기 어려운 선교사와 가족들을 한 명이라도 더 진료할 수 있도록 시간을 아껴야 했다. “하나님, 저의 두 손을 도구로 써주시옵소서. 돕는 손길을 보내셔서 해가 지기 전에 더 많은 환자를 돌보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막 진료를 시작하려는데 한 아가씨가 찾아왔다. “관광으로 한국에서 온 치과 위생사 김혜숙입니다. 친구들과 여행을 왔다가 비행기표를 잃어버렸어요. 마침 선교사 한 분이 그것을 주워 보관하고 계신다기에 찾으러 왔던 길입니다” 무엇이라고? 치과 위생사? 나는 다짜고짜 말했다. “나를 도와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함께 일하면 훨씬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아가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해볼께요” 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날 어두워서 입 속이 안 보일 때까지 선교사와 그 가족들을 모두 치료할 수 있었다.
김혜숙은 그날부터 관광을 포기한 채 우리 선교팀 일행과 함께 가리오방기 빈민촌과 초등학교, 천막교회와 나쿠루 지역 공립 병원 진료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를 도와 일했다.
스물여섯살. 아름다운 용모. 그녀는 성실하고 유능했으며 경험이 많은 뛰어난 치과위생사였다. 다만 한가지,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그녀의 영혼이 안타까워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제시했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가리오방기는 나이로비 시내에서 울퉁불퉁 자갈길을 한 시간 정도 가면 만나는 빈민 지역이다. 물도 없고 하수도 시설도 없다. 화장실도 없고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과 쓰레기가 함께 섞여 지내는 곳,
여기서 마지막으로 치과 진료가 있던 날, 나는 차마 김혜숙에게 함께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곱게 자란 도시 출신 처녀에게 너무 험한 일을 부탁하는 것이 미안했다. 게다가 그녀에겐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명감도 없질 않은가. 그러나 내가 치과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말없이 기구를 소독하던 그녀가 조용히 나를 따라 나선다. 결국 그날 종일 환자를 치료하고 지친 몸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케냐를 떠나기 하루 전, 김혜숙은 주님을 영접했다. “저는 그 동안 교회 다니는 사람을 멀리 했습니다. 모두가 위선자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난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았습니다. 저도 그분을 믿고 그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이튿날, 우리는 헤어졌다. 선교 팀은 다음 선교지로, 그녀는 함께 왔던 친구들과 합류하여 한국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그녀에게서 편지가 왔다. “요즈음 교회에 다니며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년 휴가에 다시 케냐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그때는 관광이 아니라 선교하러 가게 될 것입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셔서 케냐까지 보내어 만남을 갖게 하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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