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억울함에서 황송함으로

2004-05-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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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주일 날 예배를 마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과연 내가 사모로서 역할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서재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것저것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처음 내가 자동적으로(?) 사모가 된 그 당시로 생각이 거슬러 올라갔다.
전도사하고 결혼한다고 하니까 주위에 많은 분들이 “그 어려운 길을 왜 가려고 그래”라고 만류했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기만 하면 돼요”라고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사기충천한 용사처럼 당차게 대답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른 채 당당하게 말했던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랫동안 책장 한 쪽 구석에 꽂혀져 있던 사모에 관한 몇몇 책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 양은순 사모님이 쓰신 ‘억울함일까 황송함일까’라는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관계 속에서 눌렸던 어떤 부분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여러 사람의 기준에 따라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모라는 위치가 억울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황송한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만으로도 황송한데 다른 성도들을 돌보며 섬길 수 있는 사모라는 신분까지 주셨으니 어찌 황송하지 않을 수 있으랴는 그분의 고백에 정말 동감했다. 그리고, 아직도 부족함 투성이의 연약한 자를 오히려 성도들을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어느 목사님은 “욕을 먹으면 행복하기 때문에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정도의 수준까지 가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것 같다. 그분은 욕을 잘 먹고 소화시키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일단 욕을 들으면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지 말고 즉시 그 욕을 들고 하나님께로 달려가라는 것이다. 그 욕이 사실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고 자신이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혹시 오해라면 하나님께 위로와 상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하나님 앞에 먼저 아뢰는 자의 삶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 내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빠뜨리지 않고 드리는 내용이 있는 데 그것은 베드로 전서 3장 4절에 나오는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이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소용돌이 한 가운데 눈처럼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치 않고,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으로 날마다 주님 앞에서 단장하기를 끊임없이 훈련해야겠다.

이 지 영 (LA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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