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의 인류 역사는 8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서북쪽 챔플레인(champlain) 호수 지역에 소규모 집단의 팔레오(paleo) 아메리칸 본토 인디언이 거주한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 퀘백에 진을 치고 있던 프랑스 탐험가 사무엘 챔플레인이 1609년에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 챔플레인 호수로 명명했다.그들이 정착했던 북부 배리(barre)시 인근 지역 일부에서는 현재까지도 불어를 모국어로 사
용하고 있으며 1724년 영국이 이주하여 이민 역사는 시작됐다.
지질학적으로 5천만년전 아팔라치안 산맥을 중심으로 수면하고 있던 지층의 강렬한 지각 활동으로 표면이 용기되고 암석이 변형되는 복잡한 구조적 지질을 갖게 되어 이로 인해 배리시 주변 산악지대는 현재 고`급 자재로 각광받고 있는 엄청난 양의 대리석과 화강암을 생성하고 있다.
버몬트주는 자연경관을 친환경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빌보를 허용치 않는다. 모든 교량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 위에 지붕을 씌어 운치를 살리고 있다.
계곡과 물이 많고 산세가 아름다워 낚시, 골프, 사이클, 보트타기, 캠핑, 스키, 레프팅의 천국이며 벌링턴시의 재즈 페스티벌은 꽤나 유명하다. 또한 낙농업 발달로 우유, 치즈 등 유제품과 메이플 시럽은 버몬트주 최대의 수입원이 되었다.
필자는 91번 인터 스테이트 고속도로를 따라 배리시에 여장을 풀고 그로튼(groton) 마운틴의 정상을 돌아 3일간 머물다가 킬링턴으로 내려와 여기서 과정을 돌아보았다. 늦은 오후 그린 마운틴을 찾아 폭포를 촬영하다가 시간이 지체되어 날은 저물고 어쩌다 엉뚱한 방향으로 하산하게 되어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미로를 헤매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해 수풀을 이리 저리 헤치고 나가는데 그만 늪지대에 푹 빠져 버렸다. 허리까지 물이 차 올라와 나뭇가지를 잡고 간신히 나오긴 했으나 어떻게 나갈 지 암담했다.
우측은 가파른 산이고 그 아랜 온통 늪지대다. 낮은 지대의 개울을 따라 가면 마을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개울쪽으로 갔으나 전진을 할 수가 없어 포기하고 다시 산중턱으로 올라가다 미끄러져 뒹굴다가 나무에 걸려 다행히도 부상은 면했다. 가을인데도 여름같이 덥고 모기떼가 극성이었다.
앞 뒤 좌우를 아무리 살펴봐도 어디 하나 제대로 트인 곳이 없고 정글 같은 숲만 보였다. 기운이 빠져 기진맥진 한데다 어둠이 내리고 불안이 겹쳐, 땀이 비오듯 솟아 내렸다.
손전등을 켜들고 흠뻑 젖은 옷과 질퍽한 신발을 비춰 보니 꼭 패잔병 꼴이었다. 총 대신 삼각대만 들고 있을 뿐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갈팡질팡 헤매길 2시간이 지나 늪지대에 놓인 뗏목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을 건너자 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때 시각은 밤 9시, 산속에서의 2시간이 준 어둠 속의 적막은 공포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다음날 이른 새벽 계획대로 지도를 보고 제니 농장을 찾아 나섰다. 목가적인 시골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찾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오르내리는 길이 인상적인데다 꾸불꾸불한 비포장 도로가 주는 정감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 없다. 언덕 위의 농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슬이 내린 이른 아침이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채색된 헛간 ‘레드 반’(red barn)의 잘 어우러진 모양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삼각대를 펼쳐 놓고 카메라를 올려놓은 다음 구도를 잡았다. 왼쪽에 두 그루의 오래된 큰 나무가 이른 아침 측광선에 의해 연출되는 그림자를 정감 있게 포착, 앵글에 담았다.
제니 농장은 6대에 걸쳐 내려온 농장으로 배경이 빼어나 헐리웃 영화를 여러 차례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우스개 소리로 이 농장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코닥회사가 제니 농장 방문자들에게 필름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을 것라고들 한다. 그만큼 작가들이 사진촬영을 하러 많이 온다는 얘기다.
<이동곤: 국제프리랜스 사진 작가 협회 정회원 및 다니엘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