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국의 벗 주형에게

2004-04-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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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종 기 목사 (충현선교교회)

주형, 자네 생각을 할 때마다 추억이 떠오른다네. 생각나지? 중학교 때 여름방학이었지. 우리 처음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안성천에 멱 감으러 갔다가 바지 잃어버린 것 말이야. 아마 내가 없었으면 자네는 지금까지 계속 물 속에 남아있었을 거야.
실은 말이야. 이렇게 자네에게 편지 쓰는 이유가 있다네. 우리 교회의 장로님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거든. 그런데 내가 내드린 숙제가 세사람 이상에게 전도하는 것이야. 장로님께 숙제하시라 해놓고 내가 않으면 잘못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도 200개가 넘는 이메일주소를 모두 검토하면서 전도할 사람을 찾았지.
그런데 말이야. 난 정말 놀랐어. 내 근방에 교인 아닌 사람이 거의 없는 거 있지. 딱 세사람이 신자가 아닌데 자네가 그 중의 하나더라. 가만히 생각하니 더 열심을 내어서 자네를 전도하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 자네가 성당에서 결혼한 것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도미하기 전, 자네 집에 갔을 때, 자네 성당 안 다니는 것 같더라.
나는 사실 수년전까지 인생의 마무리를 진지하게 생각하여 본 적이 없어. 요즈음에는 왠지 생애의 끝이 보이는 듯하여 삶을 다시 되새김하게 된다네. 나보다도 자네가 더 장수하기를 바라지만 자네도 뭔가 노후대책은 있어야지. 확신하건대 직장생활을 오래도록 하여온 자네가 경제적으로는 분명히 나보다 노후대책이 잘되어 있을 줄로 믿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네 영혼의 노후대책이야. 자네 영혼이 영원한 평안을 누릴 확신이 있느냐는 것이지? 자네는 성실히 살면 뭐 되는 것 아니겠나 생각하겠지.
그러나 생각하여보세. 성실하게 사는 것은 현재의 삶에 관한 것이고, 죽음 이후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많은 사람이 죽음 이후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투자도 아니한다네. 외람될 지 모르나 목회자로서 친구로서 자네 영혼의 순례길에 동반자가 되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네.
어렵더라도 자네 집에서 가까운 DS교회에 먼저 출석하여 보시게. 그 교회 목사님, 내가 존경하는 분이야. 자네가 먼저 부인과 함께 가서 보시고, 아이들과 어머니도 속히 좀 신경을 써야 될 걸세.
주형, 내가 알기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병들었네. 일종의 정신적 마비 증세지. 허무감이나 불안감이 녹차의 향내처럼 코끝을 잠시 스쳐가지만 이내 그것을 잊어버리게 되지. 많은 현대인이 허공에 뿌리를 내린 채로, 자신은 굳건히 서 있다고 믿지. 지금 여기가 전부이고 심판도 없고 영원도 없다는 무모한 생각에 영원한 목숨을 거는 도박을 하고 있지.
답장이 없더라도 또 편지 드리리. 우정은 많은 세월의 만남조차도 아쉽게 만드는 가난함일세.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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