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늙어버린 청년들

2004-04-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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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을 향한 문화사역을 하다 보면 마음에 구멍이 휑하니 뚫린 듯한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다. 최신 유행 헤어스타일에 세련된 하이라이트까지 한 20대 초반의 청년이 리커스토어 앞에서 로토 티켓 한 장을 일전짜리 동전으로 열심히 긁어대고 있을 것을 보았을 때. LA 어느 명문대학교 교내 식당에 모여있는 대여섯명의 대학생들이 입에 거품을 물어대며 주식에 대한 대화를 하며 “Easy Money, Easy Money!”를 외치는 것이 귀에 들어 왔을 때. 평일 오후 서너시께 눈이 벌개서 흐느적거리며 PC방을 나오던 청년과 눈이 마주쳤을 때. 처음엔 측은한 마음이, 다음엔 울컥 치미는 답답함이, 그리고 다시 허전해 오는 마음을 애써 쓸어 내리고 생각해 본다. 나의 20대 청년시절도 저랬던가?
내가 대학생활을 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뎌놓던 80년도만 하더라도 주위의 청년들에게 무엇인가 인생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기억된다.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소수민족을 위해서 일해보겠다… 한인 커뮤니티의 발전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 보겠다… 에이즈의 정체를 벗겨보겠다… 최초의 한인 나사 우주항공인이 되겠다… 포천 500에 들어가는 모범기업을 만들어보겠다.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런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온 청년들에 힘입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이만큼 발전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꿈을 잃어버린 것 같다. 되도록 쉽고 빨리, 돈 많이 벌어야지요… 큰집에 좋은 차 사야지요… 그리고, 편안하게 놀며 살아야지요. 결국 돈 많이 벌고 잘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잘먹고 잘사는 맹목적인 삶 속에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와 꿈을 상실한 것이다. 탱탱한 피부에 솟구치는 머리카락의 젊음이 있지만, 그 정신 속에는 인생의 급류를 피하고 얕은 물가에서 물장구를 즐기는 황혼의 모습이 벌써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청년답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좀 무모해도, 실현성이 없어도, 오버해도 좋으니까 우선 꿈을 갖고 의미 있는 첫 발을 디디라고 충고하고 싶다.
대학교마다 직업에 대한 카운슬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있고 가치 있는 인생관에 대한 교양과목을 만들라고 총장실 앞에서 단식데모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최소한 교회에서라도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는 없을까? 당장 전도사가 모자라니까 신학교에 가라, 중국에 선교사가 필요하니까 기도해봐라 하는 요구 이전에, 청년의 때에 인생을 걸만한 꿈을 가지라는 설교를 하면 비성경적인 설교일까?
청년들을 교회를 위한 봉사의 도구로 사용하기 이전에, 교회를 청년의 꿈을 찾고 키워주는 산 배움의 전당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길만이 교회가 살고, 사회가 살고, 우리의 내일에 대한 희망이 살 수 있는 길이다. 이 시대에 교회가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는, 청년들이 청년답게 살도록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이다.


이 용 욱 목사 (하나크리스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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