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사랑 비만증

2004-04-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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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날 이상한 노인이 나타나 산모에게 “이 아이를 위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해보시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어머니는 “이 아이가 누구에게든지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물론 어머니의 소원대로 모든 사람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교만하게 자라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지 베풀 줄 몰랐기 때문에 비참하고 황폐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나타나 이 사람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 사람이 말했습니다.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헤르만 헤세의 단편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위의 글은 ‘지혜로 여는 아침’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 속에는 오늘날을 살고 있는 바쁜 현대인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사랑을 주는 것에는 인색하고 오히려 사랑을 받기에만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사랑 비만증에 걸린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이 이야기 속에 나타난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사랑을 받기만 하다보니 부지중에 교만해져서 내 자신이 삶에 주인이 되어버려 온통 뒤죽박죽인 미로와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또한, 계속 다른 사람의 사랑만 받다보니 그들의 도움 없이는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버리고 좌절해 버리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했을 것이다.
사랑을 주는 것은 우리의 가치 초점이 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맞추어져야 하기에 힘든 것이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자신의 귀한 것을 내어 드리는 희생이 따르기에 어려운 것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의 초상화를 보면 화려한 옷과 장식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장식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왕의 흉부에 달려 있는 펠리칸 브로치이다. 그 때 당시에 암컷 펠리칸은 어린 새끼들에게 자신의 피를 먹여 양육한다고 여겨졌다. 여왕은 암컷 펠리칸과 같은 어미의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국민들을 돌본다는 의미로 피를 흘리고 있는 펠리칸 모습의 브로치를 달았다고 한다.
듣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려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부담으로 전해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지 영
(LA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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