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사람의 주말나기 한국일보 보며 한국어 배우는 교사 랭리즈

2004-04-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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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보아·주현미에 푹 빠졌어요”

셰들리 랭리즈는 한인 타운에서도 가까운 대니엘 머피 가톨릭 스쿨의 프랑스어 교사다. 북 아프리카의 불어권 나라 튀니지에서 태어난 그는 고국 튀니지와 프랑스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두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아랍어와 이태리어, 스페인어에도 능통하다. 그의 언어에 대한 욕심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약 5년 전부터였을 게다. 그가 일하는 대니엘 머피 가톨릭 스쿨에 한인 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한인 학생들에게 프랑스 어를 가르치면서 그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 길로 한국 문화원의 한국어 코스에 등록한 그는 4년이 넘도록 기본 문법과 어휘를 닦아왔다. 이미 5개 국어에 능통한 그였지만 전혀 다른 문법 체계를 가진 한국어 학습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동사와 주어가 어디 붙어있는지 파악도 쉽지 않았으니까.
그는 문화원 클래스에 성실하게 출석하는 것은 물론 문화원과 도서관에서 한국어 서적을 빌려 읽고 위성 방송으로 한국어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한국어를 연마했다. 주말이면 가판대에서 한국일보를 뽑아 카페에 앉아 천천히 읽기도 한다. 그의 열정에 감동한 한국인 친구들은 틈나는 대로 말벗이 되어주는 등 그의 한국어 학습을 도와준다.
이제 한국 식당에 가서 메뉴를 읽고 한국어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쯤이야 아무 문제 없이 할 수 있다. TV 프로그램 가운데는 보아와 장나라, 주현미가 나오는 쇼 프로를 좋아한다. 루이 14세 때 시대물 같은 대장금 역시 흥미있게 시청했다. 셰익스피어 시대 영어를 읽는 우리들처럼 요즘 사용하는 한국어와는 사뭇 다른 옛 스타일의 말투가 그에게는 새로운 아름다움이었다.
한국어를 배우고부터 그의 늘어가는 한국 학생들과의 관계는 더욱 각별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쏭달쏭해지는 프랑스 어. 하지만 학생들은 그들에게 프랑스 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정확한 발음으로 “숙제 꼭 해와요.”라고 말할 때 놀란 토끼 눈을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온 몸으로 외국어 학습의 기쁨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롤 모델이다.
그는 한국어를 통해 한국과 동양의 사상을 공부하고 싶어한다. 언어는 문화를 이해하는 창, 평생 동안 서구의 언어와 철학만을 공부해 온 그에게 한국어와 동양 사상은 또 다른 도전이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며 그의 출중한 어휘 실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떤 단어를 가장 좋아하세요?”란 질문에 그는 꿈을 꾸듯 먼 곳을 응시하며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입을 떼었다. “자…유…”
20대보다 더한 향학열을 안고 있는 셰들리, 그가 물처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을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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