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쓰다듬고 보듬어 주는 축복

2004-04-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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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아내가 한국엘 다녀왔다. 아내가 없는 동안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2학년인 아들을 돌보는 것은 당연히 내 몫이 되었다. 아내 없이 아이들을 일일이 챙겨 돌보아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리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떠나기 전날, 드디어 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없이 한 주간을 지낼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가 보다. 엄마 없는 집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딸아이에겐 아무 것도 위로가 되어 주지 못했다. 우는 아이를 보니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작은아이는 사내 녀석이어서 그런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말없이 끔벅거리기만 하는 눈빛에서 그 불안한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엄마를 공항에 마중하고 돌아와서, 큰 아이는 엄마 사진을 베개 밑에 묻어 놓고 잠이 들었다. 저녁 내내 울어서 퉁퉁 부은 채로 감은 아이의 눈을 안쓰러운 맘으로 바라보면서, 아이의 삶에 차지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자리를 생각해 본다.
부모가 아이 곁에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은, 아이의 삶에 엄청난 능력이 된다. 엄마가 꼭 밥을 해 줘서가 아니고, 아빠가 아이의 사이언스 프로젝트를 도와줘서가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함께 있어 바라보아 주는 눈길이 필요하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축복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다.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쩌다가 우연히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허락한 일이라면, 부모로서의 소명은 우리의 직업보다, 경력보다, 은행 잔고 보다, 아니 우리 자신의 행복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교인 가운데도, 훌륭한 실력과 경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와 함께 있어 주기 위해 자신의 전문직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수 없을지 모르나, 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가장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라고 칭찬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보면, 어려서부터 부모의 터치를 받고 자란 아이는, 특히 아빠가 사랑으로 쓰다듬고 보듬어 준 딸들은, 성적으로 문란해지거나 방탕해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민 가정의 문제는 돈으로 자녀들을 키우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녀와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 중에 가장 강력한 약속도, 바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는 말씀이다. 오늘도, 틈새 시간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발레교실과 태권도장엘 따라 간다. 그들의 뒤뚱거리는 몸놀림을 바라보며, 어설픈 기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나와 내 아이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잘 알기에…

김 동 현 목사 (언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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