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식한 기도

2004-03-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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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의 얘기다. 기억에 고2때라고 생각되는데, 매주 금요일 말리부 뒷산으로 철야기도를 갔었다. 지금은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지만 그때는 그 곳 장로교 수양관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그마한 산이 있었다. 당시 한참 열심을 냈던 청소년 선교단의 멤버들이 금요일 밤 그곳에서 철야기도를 했는데, 하루는 설교하시던 전도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도는 생사를 걸고 해야하는 것이다.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나무뿌리를 뽑는 기도를 해봐라! 평소 침착하고 냉정한 나였지만, 그 말씀을 들으며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설교가 끝나고 흩어져서 개인기도를 할 때 나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내 키 만한 나무를 하나 골라잡았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비지땀을 흘리며 그 나무와 씨름을 하였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마음에 떠올리면서. 온몸의 기압을 모아서 밀어보고, 당겨보고, 끌어보고, 발로도 차보았지만 그 조그마한 나무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그 나무에게는 아직도 미안하고 지금이라도 말리부수양관에 찾아가서 변상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믿음이 약해서인가, 기도의 능력이 부족해서인가, 점점 더 초조해지는 마음에 나중에는 나무에 올라타서 악을 쓰며 당겨보았지만 결국 그 나무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말았다. 먼동이 터 오는 시각, 밤 내내 나무와 씨름을 한 결과는 멍든 무릎과 부르튼 손바닥뿐이었다.
그것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무식한 기도였고, 가장 기억에 남는 기도였다. 그후 20여년 동안 수많은 기도에 대한 경험을 해보았지만, 지금도 기도란 말을 들으면 그 때 말리부 뒷산에서의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신학교에서 기도에 대한 권위자 교수님의 클래스, 또 여러 세미나에서 기도에 대한 강의를 듣고 많은 책을 읽으며 그때 나의 기도가 얼마나 무식한 기도였는지 깨닫게 되었고 창피스러웠다.
사역을 해오면서 성숙하고 신학적인 기도를 하도록 노력하고 가르쳐왔다. 감정적이고 맹목적인 기도를 조심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하도록 설교해왔다. 그런데 가끔 무식했던 그 말리부 뒷산에서의 기도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의 지식과 경험과 체면과 계산을 떠나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떼를 쓰며 매달리고 싶을 때가 있다. 배고픈 어린아이가 무엇을 분명히 달라고 말을 하지는 않고 부모에게 울며불며 떼를 쓰는 것처럼, 그냥 영적인 아버지에게 목적 없는 투정을 부려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자연의 재앙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낄 때, 착한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의 손에 고생하는 것을 목격할 때, 가장 믿고 신뢰했던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낄 때... 그냥 1시간동안만, 아니 단 10분이라도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기도노트북을 접어두고 뒤뜰에 나아가 잔디라도 뽑으며 무식하게 기도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이해해주시고 인자한 모습으로 지켜보아 주실 것으로 믿는다.

이 용 욱 목사 (하나크리스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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