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아빠, 소금넣어 드릴께요

2004-0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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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 눈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인 아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 못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 아저씨는 그때서야 그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저어… 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 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야…”
그렇지 않아도 주눅든 아이는 주인 아저씨의 말에 낯빛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잠시 후 주인 아저씨는 순대국 두 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앉아서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줄게“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앞 못보는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 주었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 떠. 내가 김치 올려 줄게.”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 아저씨는 조금 전 자기가 했던 일에 대한 뉘우침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행복 비타민’이라는 책에 나오는 글이다. 주인 아저씨는 드디어 자신에게 행복 비타민 결핍증 증세가 있는 것을 느꼈을 거다. 분명 그 후로부터는 그의 마음은 달라졌을 거다. 그리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말투까지도.
눈먼 아버지에게 대하는 어린 딸에게서 그는 행복 비타민을 찾았기 때문 일거고 뿐 아니라 그것을 먹었을 거다.
요즈음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한 좋은 비타민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집집마다 식탁 옆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 비타민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런 비타민과 다른 또 하나의 비타민. 행복을 알게 하는 비타민. 눈먼 아버지의 딸아이가 주고 간 비타민. 주인 아저씨가 먹어 본 비타민.
나도 올해는 이 비타민을 식탁 위에 올려놓아야겠다. 식사가 끝나고 난 후 잊지 말고 먹도록 보이는데 다 두어야겠다. 식구들마다 먹을 수 있도록.

황 순 원 (예향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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